04.21
오랜만에 가까운 사람과 대화다운 대화를 했다. 얼마 만의 대화인지. 뭔가 삶에 생기가 돌았다. 이전에는 습기 찬 마음 같달까..? 무튼 그 애와의 대화는 내가 다시 나로서 돌아갈 수 있는 시발점을 만들어 주었다. 그냥 정신이 맑다. 유효기간이 짧은 대화일지 몰라도, 이런 날들을 만들어 나가면 난 또 금세 내가 좋아하는 내가 될 것이다. 내가 나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충분히 아파하고 충분히 잡아도 봤으니 후련하다. 후회도 없을 것 같다. 그냥 뭉개진 마음과 펴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 애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니 그냥 용서하기로 했다. 모든 연애가 그렇겠지만 너와의 시작은 정말 꿈같은 행복이었어서. 그래서 난 다시 너와 스쳐 지나가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다. 아주 가끔 뭉클했다 또 끝까지 네 이야기를 하지 않는 너를 궁금해했다 하겠지만.
04.22
집을 나에 비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집을 어지를 수 없었다. 정리를 하지 않으면 마치 내가 나를 방치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래서 혼자인 그 집에 가면 공허했지만, 그렇다고 집에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내 스스로가 나를 놓아버린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지막 남은 손을 놓으면 영영 돌려놓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꾸역꾸역 살았고 자주 슬픔에 빠져 허우적댔지만, 그런대로 적응하고 나아졌다.
잘못 누르면 물러터질 것 같은 마음을 부여잡고 잠에 들고, 꿈에서는 전 애인과 함께 있는 내가 있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너와 하지 못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비록 깨어나면 네가 있었다는 것 말고는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현실의 연장선이었다. 3시에 잠에 들어 6시면 깨어나는 며칠을 보냈다. 한 번 깨어나면 다시 잠에 들기 힘들었다. 생각하기 싫었지만 계속해서 생각이 나니까. 눈을 감으면 마음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잠을 자지 못했다.
04.23
너와의 이별을 했다 하니 동기들은 모두 놀랐다.
괜찮냐고 묻는 이도 있었고, 잘 헤어졌다는 이도 있었고, 왜냐 묻는 이들도 있었고, 너와 내가 평생이 아니면 세상 누구도 사랑일 수 없다 생각한 이도 있었다. 왜 이리 아무렇지 않냐는 이도 있었다.
그냥 너를 만나는 동안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네가 모르는 눈물을 많이 배출했고, 이 연애에서 나의 1순위가 너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너에게 1순위는 너라는 것과 내가 2순위가 아니라는 것도. 근데 이걸 네게 전할 수 없었다. 그걸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멀어졌으니까. 그럼에도 형식적인 것들을 했다. 같이 먹고 같이 자고 영화를 보고.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난 마지막 날에 너와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결국 우린 마지막까지 제대로 된 대화 없이 끝이 났다. 네가 대화를 거부했으니까.
나름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상대가 회피한다 해서 나까지 회피하지 않았다. 지난 연애에서 한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또 네가 한 마지막 말을 이해를 하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여전히 너를 이해할 수 없지만 꼭 알아야겠다는 마음은 사라졌다.
혹여나 네가 먼 훗날 회피한 걸 후회한다면 이란 생각을 했지만, 그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네가 스스로 회피형이란 걸 평생 몰랐으면 한다. 딱 거기까진 사람이었으면 하는 나쁜 마음이다. 뭐든 상관없겠지만.
난 너와 어떤 연애라도 좋았는데 사실.
04.26
꿈속에서 난 또 너에게 안기고 우리 그냥 만나면 안 되냐는 식상한 질문을 머금고 그랬다. 너는 하필 다정하게 웃으며 안아주며 안된다는 표정을 짓고
잔인한 사람이라 내뱉은 기억이 있다.
이제는 꿈에 네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05.11
나는 여전히 여유로운 하루의 산책과 혼자 듣는 음악과 카페에서 읽는 책과 끄적이는 행위, 그 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흑연의 냄새가 좋다.
오랜만의 연락 온 옛 애인이 했던 말 그대로 나는 여전하구나 싶었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다른 건 바뀌어도 내가 쉴 수 있다 생각하는 하루가 여전히 견고해서.
한 번에 두 관계를 끊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여전히 떠오르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 계속해서 들춰지겠지만, 그럴 때마다 쉽지 않은 마음과 함께 또 한 번 뭉개지는 마음이겠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행태를 그럴싸하게 되돌릴 수 있다. 아직 무른 마음이 약해지는 시기인가 보다.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