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쓰지 말아야 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댓글
저는 실존주의 철학이 제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살아가는 이유를 모르니 -> 허무하기에 더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 마음이 절 자유롭게 합니다 언급하신 바와 같이 삶에 본질적인 의미는 없습니다 혹은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것을 한정된 의미 안에 가두는 일이기도 하겠다 생각합니다 말장난 같을 수 있겠지만 의미가 없으니 어떠한 의미라도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생각을 품으니 무의미함도 제겐 자유가 됩니다 또 저는 우리의 아픔이 언젠가는 우리의 강함이 되기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 사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굳건하게 믿습니다 한때는 그저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증오하기도 하였는데, 다들 저마다 힘든 시기를 맞이하더라고요 그 끝이 죽음일지 죽여주게 멋진 글 한 편일지는 그 사람에게 달렸지만요 그러니까 우리는 몹시 아픈 예방 접종을 미리 맞았다고 생각합시다 그리고 너무 힘들면 그냥 X까라고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존재를 해할만큼 가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안녕하세요, 길게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아가는데 정해진 이유는 없으니 무엇이든 이유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삶을 사는데, 저는 제 이유를 찾지 못해 불안했거든요. 맛있는 걸 먹기 위해, 아직 해보지 못한 재미난 일들이 많아서, 그냥 하루하루가 이어지니까 사람들은 살아가더라고요. 저도 언젠가는 제 삶이 의미있어질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있겠죠? 이번은 죽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다음의 고비가 오기 전까지는 이유를 찾으며 살아가겠습니다. 좋은 새벽 되세요.
윗 분과 일맥상통하는 말 같긴 한데 삶의 이유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힘내시고, 지지마세요 하루치의 불행을 견뎌낼 하루치의 행복을 찾으며, 살아서 이유를 계속 찾아봅시다
안녕하세요. 저도 8살때부터 우울을 앓아 한 10살때 부터인가 유서를 쓰고, 22살 때 처음 문득 살고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저도 20대 후반이고요. 그나마 우울증에서 좀 벗어났다고 느낀 건 사실 1-2년 정도밖에 안 됐네요. 완치까진 모르겠지만 이젠 좀 살만 합니다. 병원은 한 번도 안 갔어요. 재해님의 글에서 제가 보였어요. 저도 제 사인은 부디 자살이길 바라며 소심하지만 어딜 가든 안전벨트를 안 한다거나 심할 땐 일부러 차에 치인 적도 있어요. 절 괴롭히던 부모님이라도 제발 절 살려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유서도 보이는 곳에 뒀고요. 여기 적지 못할 시도들도 많았습니다. 제가 살고싶어졌던 첫 순간은 이상하게도 혼자 자취를 하게되며 월세를 낼 돈과 가스비, 전기세 같은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였어요. 그 때 고군분투하는 저를 보며 ‘아 나 죽고싶은게 아니라 잘 살고 싶은거구나’ 싶더라고요. 그와 동시에 나라고 잘 살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지? 하는 억울함도 느꼈어요. 유튜브에 심리학 관련 영상을 많이 찾아봤던게 좀 도움이 되기도 했어요. 제가 힘들고 우울한 게 제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인 거라고 느낄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우울을 해결한 사람들도 많아 나오더군요. 이지영 선생님이 과거에 힘드셨던 얘기를 하시면서 ‘자기 파괴적인 생각이 드는 건 다 그만큼 나를 사랑해서 그런 거다’라고 했던 걸 보고 펑펑 울었어요. 나만큼 날 잘 알고 사랑해줄 사람이 없는데 왜이렇게 나를 지우고 싶었을까요. 나한테는 내가 세상인데 왜이리 힘들까요. 그래서 절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생각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더라고요. 절 사랑해보려고 하니 제가 좋아하는건 뭔지 뭘 할 때 기분이 나아지는지 취미, 입맛 이런 것들을 알아가게 되네요. 그래서 제 비위를 맞춰가며 언제 죽어도 괜찮다는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요. 그게 스스로라도. 아 그리고 작년 1월에는 죽어도 상관 없단 생각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가봤어요. 근데 그게 오히려 미션 달성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어요. 한번 살면서 절대 못할거라 생각하던 걸 해보세요. 전 ‘어차피 죽을건데 이거 해보다가 죽으면 어때?’ 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했는데 취향과 취미를 찾아버렸어요. 삶의 의미는 크게 없는 것 같아요. 진짜 우울이 심할 땐 그 기운에 잠식돼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잖아요.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어렵겠지만 뭐라도 좋아하는 것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전 우울을 오래 겪은 만큼, 지금까지 겪은 절 잘 아니까 이제는 너무 안쓰러워서 잘 됐으면 좋다는 마음으로 아껴주려 하다보니 좀 나아졌어요. 재해님이 가진 우울의 깊이와 아픔은 제가 다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저를 통해 작은 희망이라도 보셨으면 좋겠어요. 살고싶어질 거예요. 같이 살아봐요. 재해님은 이미 오랫동안 역경을 잘 버텨온 대단한 사람이잖아요. 뭐든 못할 게 뭐 있어요! 언젠가 그동안 죽음을 망설인 재해님에게 감사할 날이 와요. 제가 장담할게요. 고비가 찾아오면 언제든 여기에라도 털어놓아주세요.
치료 없이 스스로 우울을 어느 정도 이겨내셨다고 하니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상담을 받거나 약물 치료를 해도 마음가짐이 대부분의 역할을 한다고 해요. 의사 선생님도, 상담사도 매번 자신을 아껴주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네네 대답은 하지만 왜 병원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그 조언은 사라져버릴까요? 가끔 아, 나는 우울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가보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정말 이 상태가 괴로우면 사고방식을 바꾸거나, 누구나 말하듯 운동을 하거나 할 텐데 저는 늘 망설이는 주제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 같아요. 연명 님께서도 그렇고, 우울증을 이겨낸 사람들을 보면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면서 사고방식을 바꾸어 갔다고 말하네요. 제게도 그런 날이 올까요? 어쩌면 자살이라는 게 저에게는 바뀔 수 없는 가치관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제가 이 댓글에 공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연명 님. 좋은 한 주 보내세요.
저도 어느 날 갑자기 바뀐 건 아니었어요. 저도 모르게 조금씩 달라졌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저도 너무 괴롭다보니 빨리 끝내는 게 정답이지 않을까? 굳이 내 생각을 고칠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건 너무 오래 아파서 힘이 없었던 거더라고요. 내 생각을 고쳐야지 하며 생각한 게 더 저를 움직일 수 없게 했어요. 그래서 재해님이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라고 결론 내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많이 지쳐 계신 것 같아요. 혼자만 견디려고 하시기보단 병원이나 상담도 계속 의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혼자 해결한 게 아니었어요. 익명의 누군가에게 기댄 적도 많고 여기저기에 도움을 청했어요. 언젠가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 라며 과거처럼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할게요. 많이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짧은 우리 생에 작가님을 뵙게 되어 다행입니다 추측컨대 선생님께선 살고 싶을 때마다 오늘처럼 글을 썼겠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글자들, 어느날에는 죽고 싶어서 쓰고 또 다른 날엔 살고 싶어서 썼던 그 글자들은 이 세상 어느 작가의 글자들 보다도 더욱 살아남아서 내일의 세상을 살아가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짧은 생이지만 제 생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제 이야기를 전하자면 저는 걷지 못하는 동생을 두고 있고, 부모님은 이혼하신지 오래 되어 제가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한지가 꽤 되었습니다 우울을 자랑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제 이야기가 선생님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근데요 저는 누군가 저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면 그냥 평범하게 번듯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깊은 우울에 빠진 누군가 절 보고선 “나도 저 사람처럼 웃는 날이 오겠지” 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물론 현실이 달라지는 건 별개의 일이더라구요 앞으로도 우리는 많은 날을 눈물로 보내주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울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린 무언가 쓰는 사람이니까 그것을 담아 오늘처럼 써내려 가시길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우울도 차츰차츰 희미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적어도 저만큼은 잊지 않을게요 슬픈 밤이지만 이 밤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자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