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도 더운 여름날,
아주 가끔 시원한 소나기가 내릴 때 마다
마루에 걸터 앉아 새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너를 떠올리곤 했다.
한 여름에 겨울을 함께했던 너를 떠올리다니
사람은 가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명분을 담아낼 때가 많다고 한다.
가령, ‘오늘은 비가 오니, 전을 먹어야겠어.’ 라던지
‘지금 3시 41분이니까 딱 4시에 공부하자’ 같은.
어쩌면 이토록 쨍한 여름에 예보 없이 찾아온 소나기를
핑계 삼아 너를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겨울 평상시처럼 추웠던 날,
집 가는 길 축 쳐진 어깨에 터벅터벅 소리 내며
자신의 고단함을 애써 티 내고 다녔던,
누군가 나 오늘 이만큼 고생했다 알아주길 바랬던,
반복되는 지루한 하루 중의 하루일 뿐이었던 그저 그런 날.
집으로 가는 길 목 벤치에 앉아 기다리던 너가
걸어오는 나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댔다.
그러곤 많이 힘들었냐는 말 대신,
조용히 옆자리를 툭툭 치며 앉으라 하던 너.
유독 오늘 따라 밤하늘이 맑아 헤아릴 수도 없는 별들을
굳이 같이 하나씩 세어가던,
그저 그런 날이 정말 그저 그랬던 날이 아니게 만들었던.
별을 담아내던 너의 눈동자를 기억한다.
‘사랑’:
평소에 모든 것에 무심하던 사람도,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조차 마음의 낭비라고 생각해
감히 다가갈 수도 없었던 로봇 같던 사람도
어디를 가든 너를 생각하게 하고,
맛있는 걸 먹으면 다음에 함께할 너를 떠올리게 하고,
추워하는 너에게 따뜻한 손을 기꺼이 내어줄
낯선 나를 발견하게 한다. 그 ‘사랑’이란게 뭐길래-
또 하루는 그랬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모처럼 너를 기다리며 두 손에 유자차를 들어
추위도 뜨거움도 모른 채 서 있었던 그 시간을.
유독 감기에 약한 너가 없던 감기에 걸릴까 걱정되어
꽁꽁 얼은 내 손은 뵈지도 않고
오로지 너가 따뜻함을 느낄 그 순간을 기대하며
그렇게 ‘기다림’이라는 걸 배웠다.
지난 겨울의 차디찬 많은 시간들을 지나
너와 함께한 짧은 계절에 나는 설렘과 사랑, 기다림을 배웠다
그리고 쨍한 햇빛의 한 여름에서도 겨울의 냄새를 잊지 못하고
바보 같은 핑계에 기대
너를 떠올리는 ‘그리움‘을 배웠다
회색 공기 가득한 나의 삶에 겨울의 따듯함을 알게 해준 너.
나는 이제 이 긴 여름 속에서
끊임없이 너를 떠올리다
다시 찾아올 너의 계절을 맞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