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일은 굳이 따지자면 연말에 가깝습니다. 그 한 해가 정신을 망가뜨릴 대로 망가뜨려서, 생일에 죽을 계획을 세워보았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렇게 끝내기엔 저는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이돌도 좋아했고, 하필 제 생일 다음날부터 가는 수련회도 기대가 되었습니다. 수련회를 다녀오고 생각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세워두었던 계획을 흐지부지시켰습니다. 당연히 그런다고 정신건강이 마법처럼 뿅, 좋아질 일은 없었습니다.
정신과에 안 가면 자살할 것 같다고 부모님께 연락을 보낸 후 폰을 끄고 친구랑 놀러갔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이미 위험한 줄 알고 경찰에 신고를 하셔서 파출소에 가기도 했습니다(친구에겐 따로 정말 미안하다며 빌었고, 다행히 지금도 사이좋게 지냅니다. 무척이나 철이 없었던 판단인데, 그 당시엔 그 생각까지 닿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나봅니다).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서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약 때문에 수업에서 조는 일이 잦아졌고, 그나마 좋았던 국어 성적마저도 떨어졌습니다.
저는 일본어과입니다. 일본어과였습니다. 일본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대학도 일본으로 가고싶단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 희망과 학교에서의 절망이 충돌하여, 차라리 국내 대학과 교육을 싹 포기하고 자퇴해서 일본 입시에 올인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은 당연히 반대하셨습니다. 사실 외고에서도 자매학교 형식으로 우리를 더 느슨한 조건에 입학 시켜줄 수 있고, 학교에 다니면서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쯤은 저 깊은 곳에서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저 학교에서 더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당시 매번 정신과를 간다고 병지각과 병조퇴를 밥먹듯이 하고, 담임선생님 앞에서 엉엉 울고, 필수인 야자도 빠졌습니다(담임선생님께도 무척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어떻게든 설득을 해서 자퇴했습니다. 유학을 위해 공부해야 할 것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검정고시, JLPT N1, 일본유학시험, 토플. 자퇴한 이후로 2개월 만에 공부하여 12월에 있는 JLPT 시험을 통해 N1을 취득하였습니다(빨리 땄다는 성취감에 하는 자랑입니다만, 저는 상식 중의 상식인 한자 말고는 읽지 못하는 상태로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제가 흥미를 아직 느끼는 분야는 공부가 할만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자퇴하며 제 스스로의 시간을 직접 계획하고, 실천하고,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지금의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의 나이입니다. 일본유학시험을 준비하여 6월 말에 시험을 치렀고(다만 반년만에 더 준비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희망대학도 커트라인이 높아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현재는 2026년도 2회차 검정고시와 토플을 병행하여 공부 중에 있습니다. 재수는 반확정입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땐 가장 무서웠던 것이 재수였는데, 그런 생각이 만연한 곳에서 벗어나 혼자 공부해보니 별 생각은 없습니다.
올 2월즈음부터 정신과 약을 복용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딱히 먹기 싫다거나, 그냥 우울함에 젖은 채로 살겠다는 중2병스러운 이유는 아닙니다. 먹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중간중간 생략된 일이 많습니다. 가족 때문에 제 삶을 포기하고 싶기도 했고(지금도 가끔 그렇긴 합니다), 정신과 약 30일치를 과다복용하여 쓰러진 적도 있습니다. 하나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릴까요? 제 위는 나름 건강했나봅니다. 어머니께서 제가 그냥 쓰러진 줄 알고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셔서 위세척을 하지 않았는데, 저는 건강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보다 힘든 사람이 훨씬 많은 이 세상 속에서 살아온 삶의 길이도 짧은 제가 힘들다고 징징댈 만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부터 스스로가 힘들다고 느낄만한 일이 많았기 때문인가 저는 20살에서 30살 그 언젠가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여 끝내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었습니다. 올해 4월 초, 문득 최근에 이런 생각을 입밖으로 내뱉거나, 생각의 수면 위로 떠올리지 않았다는 걸 인지했습니다. 놀라서 친구들에게 자랑도 했습니다. 늘 삶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던 저인데, 요즘 그럭저럭 살만하다고 이야기하니 백이면 백 놀랐습니다.
자퇴하고 나서 마냥 행복했다고 말하는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가 원하던 분야의 공부여도 지치는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다만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한갈래 길에 놓여있던 제가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갈래의 길이 있었고, 그 길을 걸어보니 그것 또한 정답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절주절 쓰다보니 이야기가 정말 길어졌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는 분들이 계실진 모르겠지만, 그 분들께는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삶은 아직 망망대해의 한가운데인가요? 저는 제가 의지하고 있는 뗏목의 앞에 땅이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제가 겪은 바다는 견디기에 조금 고난이 가득한 파도가 많지만, 어찌됐든 쉴 공간이 생길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바다는 부디 온화하고 잔잔하여 여정이 오래 걸리고 조금 돌아가더라도 안전하게 잘 땅을 밟으실 수 있으시다면 좋겠습니다.
우연히 보게 된 공간에 이끌리듯이 오게 되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라 생각하기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런 게시글을 썼다는 것 자체를 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 한들 여러분은 안 계실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처음이면서도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르는, 이 글을 읽으시는 저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여러분들께.
인생은 제법 살만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