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뿐인 청춘은 과연 청춘일까요. 대개 청춘을 젊음에 빗대지만 그렇다고 젊음 자체가 청춘일까요. 젊은 마음은 뜨겁게 태워 청춘이라 칭할 만한 무언가를 만들 연료가 주어져서 그런 건 아닐는지요. 그렇담 연료를 다 태워버린 사람은 어찌 되나요?
언제나 오해하고 싶습니다. 제가 겪은 청춘이 누군가에게도 청춘이었다고. 그래서 그 기억과, 나를 함께 오래도록 회상할 것이라고. 그것이 청춘인지도 잘 모르면서, 오늘도 오만한 마음으로 연료를 모읍니다. 다시 태울 수 없다고 여전히 생각하지만, 그 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품고도 청춘의 길로 날아올랐으니.
무모함을 어린 치기라 관용해줄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청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면 저는 이 느슨한 평가의 중간에서 무얼 해야 할까요?
청춘의 모든 순간은 돌아봐야 청춘인 줄 압니다. 청춘이라 이름붙인 것도 결국 파릇한 추억이 그저 흘러가게 두고 싶지 않아 그랬던 거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 추억에 용기내어 청춘이라 이름 붙였는데도요. 어째서 전부 흘러가버린 걸까요? 꽉 쥐어도 신속히 손아귀를 벗어나버리는 백사장의 모래처럼 말예요.
바닷가의 소금기는 순간을 청춘으로 만들기 십상인 것 같습니다. 눈물인지 바다인지 모를 것들이 태양과 마구 뒤섞이면 윤슬을 만듭니다. 그 윤슬이 청춘을 기억하게 하는 요소라면 제 나날은 내내 구름이 끼었던 걸까요?
저는 청춘을 믿습니다. 그 길이 비록 먹구름 뿐이었다 해도요. 청춘! 그것은 행운이니까.
행운을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