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일의 유일한 장점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핸들을 돌릴 수 있는 것.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즐길 수 있는 것 등이 있다.
삼릉오계라 불리우는 기피지역으로 가지 않고 내 마음 가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2026년 7월 20일의 기억나는 손님들을
시간순서 없이 대충 기억해 본다.
1. 밤 11시, 김포공항에서 인천 청라로 귀가하시던 승무원님은 여자친구의 은하를 닮으셨다.
거의 다 도착해서, "말걸어서 죄송합니다만.. "으로 입을 뗐다.
나는 나이가 많지만 항공사로 이직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고, 그녀는 피곤하셨을텐데도 불구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팁들을 주셨다.
그녀는 8년차 캐빈크루님이고, 요즘은 30대인 신입 동료들도 많다며, 꼭 열심히 사셔서 잘 되시라는 따뜻한 인사와 함께 떠나가셨다.
예쁘신 고객님께서 차에 탈 때 바닐라, 커피같은 포근한 느낌의 달달한 향이 났다.
승무원님은 향수를 공방에서 직접 만들어 쓰신다고 했다.
11:47분.
승무원님 집에 거의 다 올 때쯤, 심야 팝 라디오에서는 마이클잭슨의 명작 맨인더미러가 나왔다.
밤 라디오는 스타일이 다양하다.
93.9, 106.1을 틀면 조곤조곤한 누나들이 힘든 그대를 위로하듯 속삭여주는 프로그램이 나오는데, 축축 늘어지고 우울한 노래들이 많아서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살살 녹는 목소리가 매력있는 감수성있는 팝 라디오 "신혜림의 골든디스크", 91.9 "아이돌 라디오", 아니면 말투가 기운차고 밝은 딘딘의 뮤직하이를 좋아한다.
맨 인더 미러 노래와 함께, 청라신도시가 예뻐 보였다.
그리고 나는 택시기사가 아니라 마치 gta 게임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텅 빈 도로 한가운데에서 두 팔을 벌렸다.
2. 목동신시가지에서 김포한강신도시 운양으로 귀가하시던 어머님은 60대 같으셨지만 연한 베이지색 가디건과 베이지색 반바지 룩이셨다. 친절하고 세련되신 어머님은 젊은 기사를 좋게 봐주셨다.
김포한강신도시에서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을 하던 중
오늘은 비오는 밤 10시 50분,
"어.. 김포공항 택시 없을텐데.. 빨리 김포공항 쏴서 예쁘신 승무원님 태워드리고 싶네"
라고 생각했더니 현실이 되었다.
3. 목동 학원가에서 중딩 딸과 함께 귀가하시던, young하고 세련된 아이엄마 고객님은 딸과 어느 아이스크림이 맛있다느니 수다를 떨다가, 이렇게 말했다.
"호프를 봐야하는데.. 내가 갔다 올때까지도 하고 있을까"
곧 어딘가로 장기 출장을 가시는 듯 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나홍진 감독님의 영화들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나는 목소리가 조곤조곤 조용하고 느릿한 편인데
어쩌다 기사와 대화를 트게 된 엄마 고객님은 "젊은 기사님이 목소리가 타블로 같으세요^^."
라고 하셨다.
타블로가 예전에 진행한 "꿈꾸라" 라디오도 좋아한다고 하셨다.
문화생활에 관심이 많으신 젊은 엄마와 중학생 딸은 서로 사이가 건조하지 않고 마치 큰언니와 막내동생처럼 다정해보였다.
세련된 40대 중딩 어머님은 까르띠에? 향수를 사용하신다 하셨다.
4. 청라의 예쁘신 누나를 모셔드리고..
공차로 신나게 강변북로를 타고 서울역까지 달렸다.
서울역에서 까치산으로 귀가하시던 내 또래 남자는 결혼을 준비.. 하는게 아니라 결혼'식'을 준비하는 듯 했다.
"예슬아. 우리 성혼선언문이랑.. 노래도 그렇고.."
서울역에서부터 신월동까지 계속 이야기가 흐를 정도로 생각보다 통화가 꽤 길었고
결혼식에는 챙길 것들이 참 많구나..싶었다.
"말씀 실례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 저도 30대라.. 고객님 부럽습니다 ㅎㅎ 늘 복받으세요."
친절한 젠틀맨도 따뜻하게 답해주시며 내렸다.
5. 낮에 한남동에 내리신 슬의생 전미도님을 닮은 누나뻘 여손님은 "시로" 향수를 쓰신다고 했다. 포근한 향, 산뜻한 시트러스 과일향 모두 있다고 하셨다.
6. 고터 택시대기줄에서 모셔드린 60대 어머님은 굉장히 예쁘시고 세련되셨다.
예쁘시다는 말보다는 품위있고 아름답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함께 타신 70대 부부는 어머님의 친언니 부부였고, 간만에 고향땅에 오신 미국 펜실베이니아 교포라고 하셨다.
아들같은 우리 젊은 기사님
이 일 한다고 해서 절대 기죽을거 아니라며, 많이 웃으시고, 꼭 잘 사시라, 즐겁게 사시라 인사해주시고 가셨다.
따스한 어머님은 내게 연락처까지 남겨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