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길어서, 세 개의 게시물로 분할하여 올립니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빗소리는 늘 비슷한 리듬으로 떨어지는데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로 다가오곤 합니다. 어떤 날에는 그저 신경을 자극하는 소음으로 느껴지다가도, 기분이 퍽 괜찮은 날에는 듣기 좋게 다가옵니다. 그런 날이면 창문을 느슨히 열어두고 한동안 창가에 가만히 서 있곤 하는데, 그러다 보면 좋은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오르기도 하지요.
지난 6월에 교토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앞두면 사람은 이상하리만치 무모한 낙관에 기울어지곤 합니다. 내가 그곳에 있는 동안만큼은 비가 조금이나마 덜 내려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근거 없는 기대를 품고는 하지요. 여행을 준비하면서 일본의 6월은 원래 비가 흔한 계절이라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던 터라, 캐리어 한쪽에는 우산을 미리 챙겨 넣어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몇 번이고 일기예보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비가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 같은 것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의 하늘은 온종일 무언가를 품고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먹구름은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공기는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지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했으나 쉽게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덕분에 예정대로 니넨자카와 산넨자카의 돌길을 차분히 향해 걸을 수 있었습니다.
여행지에서는 늘 그렇습니다. 평소라면 목적지를 향해 곧장 걸었을 터인데, 자꾸만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진열장 너머에 놓인 작은 찻잔을 오래 들여다보기도 하고, 이름도 모르는 골목 안을 괜히 한 번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목적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의 순간들이 한결 중요해지는 기분이 들고는 하지요.
산넨자카를 거의 다 올랐을 무렵, 조용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요란스레 쏟아지는 비도 아니었고, 어딘가로 황급히 뛰어 들어가야 할 정도도 아니었습니다. 우산을 펼쳐 들면 그대로 걸어갈 수 있는, 그렇지만 풍경의 채도를 바꾸어 놓기에는 더없이 충분한 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