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이던 돌길은 금세 차분해졌습니다. 우산이 하나둘씩 펼쳐졌고, 젖어 든 돌계단은 아까보다 짙은 먹빛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기와지붕 끝자락으로는 가느다란 빗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처마 밑에 걸음을 멈추어 선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잠시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까, 아니면 그냥 계속 걸을까. 잠시 망설이다가 우산을 고쳐 쥐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일본 택시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굳이 택시를 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숙소가 있는 기온시조역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어차피 여행이라는 것은 많이 걷기 위해 떠나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내면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빗소리를 배경 삼아 천천히 걸었습니다. 비에 젖어가는 골목의 풍경이 퍽 아름다웠습니다. 걷는 동안 운동화 앞코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고, 바짓단도 무거워졌지요. 그래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미 젖기 시작한 운동화를 걱정하는 일보다, 비에 젖은 골목의 풍경을 한 번 더 바라보는 일이 그날의 나에게는 훨씬 중요했으니까요.
한참을 걷다 보니 관광객보다 퇴근길에 오른 현지인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우산을 든 채 바삐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또 누군가는 편의점 봉투를 들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숙소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비가 조금 잦아들었습니다. 옷은 군데군데 젖어 있었고, 운동화는 하루 종일 길 위를 누빈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들어가 하루를 마감하기에는 미련이 남았습니다. 발걸음을 그대로 거두어들이기에는 아직 하루가 덜 저문 것 같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