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시대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기술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먹고 싶은게 있다면 먹을 수 있고, 입고 싶은 옷이 있다면 사서 입으면 돼요. 하지만 이러한 기술시대는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궁핍한 세대입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이유를 존재자에게서 ‘존재’가 달아났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존재자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동물을(인간 포함) 포용하는 말이고 ‘존재’란 각각의 사물/동물이 가지는 고유하고도 성스러운 성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존재자들이 발하는 성스러운 빛(기운)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하이데거는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우리가 존재자들을 ‘에너지 자원’으로 취급한다는 것 입니다. 존재자들은 에너지 자원으로 취급하니 그들이 가진 고유하고 성스러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존재자를 에너지 자원으로 보게된 이유는 ‘잡담과 호기심’때문입니다. 잡담과 호기심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자기 자신을 계속 비교하며 살아가고 그들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 남들이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 등을 통해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비교의식에 쌓여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잡담과 호기심에 의해서 아무 의미 없는 대화만 하며 살아가며 모든것을 피상적으로 스쳐가며 어느 한곳에 뿌리 내리지 못하지요. 이것을 ‘고향을 상실한 무정주성’ 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근본 기분을 통해서입니다. 일반적인 기분은 어떠한 사정이 발생하고 그에 의해 어떤 감정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은 없어집니다. 근본기분은 이와 다르게 어느 순간 우리에게 갑자기 덮쳐와서 떠나지 않는 기분을 의미합니다. 근본 기분에는 대표적으로 경외, 불안이 있습니다. 이러한 근본기분을 느끼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런 상태를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근본 기분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죽음을 직시하는 것 입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언제든지 다가올 수 있고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음을 통해서 근본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죽음에로의 선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죽음에 대하여 혹은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존재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아주 무겁고 피곤한 주제이기 때문이지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은 불안하기도 하고요. 여기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 불안이라는 기분을 통해서 나중에는 결국 불안이라는 기분이 경이로 전환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하이데거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신의 존재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많은 정신적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왜 우리의 삶은 이토록 공허한가
하이데거라는 철학자의 관점으로 현대인의 삶이 왜이리 공허하고 많은 이들이 극심한 우울감과 무상함, 불안을 느끼는지 한번 살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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