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죽음을 도피처로 생각하곤 합니다.
무언가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때면 ‘그냥 죽어버리지 뭐’ 생각해요.
정작 정말 자살을 시도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도요.
오늘 정신과 선생님께서는 제가 진심으로 죽고 싶어하는 거라면 당장 죽을 텐데,
그게 아니라면 뭐든 쉽게 포기하고 죽음을 생각하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하셨어요.
인생의 반절 넘게 이렇게 생각해 온 저는 그게 너무 어려워요.
어려움을 마주하고 헤쳐나가는 게 부질없게 느껴져요.
정말로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굳어져버린 생각의 습관은 어떻게 바꿔야 하나요?
20대 후반의 재해님이 어떤 힘듦을 겪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가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실에서 내가 겪는 고통들에서 도망치고 도망쳐도 벗어날 수 없으니 도달하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통을 필요한 것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에서 도망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고통의 순간들이 모이고, 나 자신을 계속해서 무너뜨리려 하면서 어쩌면 몇번쯤은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보기도 하면서 내가 단단한 나 자신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어려움에게서 돌아서고, 포기하는 것도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방식들이 내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러한 방식들이 내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다면 어쩌면 한번씩은 어려움을 마주해보는건 어떨까요. 재해님은 꽤 오랜시간 죽음이라는 곳으로 피난하면서 어쩌면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느끼실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오랜시간 품고 있던 죽음이라는 피난처가 이제는 재해님의 삶의 빛을 잃어가게 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도 됩니다. 사실 글 몇자 읽고 재해님의 삶에 공감하는 듯이 말하고 또 몇마디 건네는 것이 죄스럽기도 합니다. 그냥 이기적인 짓이 될지도 모르지만 제 생각 몇자에 조금의 무엇이라도 닿을 수 있는 것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살든 행복하다면 가장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고싶은 일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은 외부 모든 공격에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디만 저조차도 태어나서 하고싶은 것을 진심으로 찾아내본 적이 없습니다. 학생의 신분일 때는 공부를하고 사회인의 신분일땐 일을하고 그저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겠죠. 이런 측면에서 재해님의 생각은 오히려 고차원적이라고 느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뭘 하고싶은지도 모르고 이미 규정된 대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재해님은 납득되지 않는 이 규정된 길들을 왜 걸어가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이미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한 이상 더이상 바보같이 걷기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정말 정말 재해님이 하고 싶은일을 찾아보는게 어떨까요. 모든일에 의욕이 없는데 하고싶은일을 찾으라니 납득 안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욕없이 사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뭐라도 찾는겁니다 생각나는 떠오르는 모든 것을 해보세요. 어디선가 성공의 쾌락을 느낄지도 또 엄청난 실패의 절망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등락의 삶을 살아 보세요. 죽음이라는 도피처에 익숙해진 뇌는 따라주지 않을겁니다. 당연한겁니다 뇌는 관성적이기 때문에 살던대로 살려고합니다. 그런 관성들이 재해님을 붙들고 있을지도 모르죠. 모든걸 부질없게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부질없기 때문이 아니라 부질없다고 생각해온 뇌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 성공, 사랑, 절망 모든 것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그러한 다채로운 경험들이 쌓인 뇌가 또 어떤 생각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