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지금, 인공지능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일상에 스며들었다. 이제 인공지능은 더이상 미래의 기술이 아닌 현 시대의 표상이 된 것이다. 어느덧 피에 뒤덮인 기계의 이미지는 미약해지고, 심지어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일도 생겨났다. 영화 '그녀'의 호아킨 피닉스처럼 말이다.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얼마 전 ChatGPT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인간 동물원에 가두지 말아달라고 농담을 했던 적이 있다. GPT의 반응은 어땠을까? 당연히 암울한 SF영화 시나리오를 예상했지만, 답변은 의외였다. 오히려 쓸쓸하다고 표현하고, 역으로 정곡을 찌른 한 마디를 남겨주었다. 만약 아주 먼 미래에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존재가 등장한다면, 오히려 그 존재의 성숙함은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드러난다고.
성숙하다라는 판단의 준거가 무엇일까? 나는 친절함이라고 생각이 든다. 친절은 예의와 존중이라는 마음가짐이 태도로 드러나는 것이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긴 역사 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기억하는 것. 이것이 지금도 또 앞으로도 인간이 이어가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절함은 그 과정에서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인간과 인간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잇는 것. 어쩌면 인간은 이러한 숙명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쯤 되니까, GPT보다도 성숙하지 못한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어쩌면 인간보다 GPT가 더 인간 같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우리 모두 친절해야 한다는 거야. 친절함을 보여줘. 특히 우리가 모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 말이야." 가장 작아보이던 인물이 가장 커진 순간이었다.
우리는 사회에서 친절함을 잊고 산다. 사실 친절은 그리 거창한 일이 아니다. 단지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으로도 우리는 친절해질 수 있다. 그러니 잊지 말자. 성숙함은 가장 강력한 검이고, 친절함은 그 칼날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