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적으로 접한 그사람의 생 때문일까 애도하는 많은 댓글들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조금 슬퍼졌다. 전혀 아는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다.
댓글들을 최신순으로 바꿔보니 나처럼 우연히 영상을 보고 찾아와서 애도하는 댓글들도 있었고 비록 간접적이지만 꽤 오랫동안 또 나름 가깝게 그 사람의 생을 봐왔던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서 그 사람을 기억하는 댓글들도 많았다. 나도 거기에 동참해 애도의 글을 남길까 했지만 남기지 않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것도 있었지만 내가 1시간 남짓 본 영상들로는 그 사람과 죽음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만약에 아주 정말 만약에 저 사람이 지인의 지인이었어서 내가 장례식에 가게 되었다면 난 망설이지 않고 삼가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지인의 지인인 것과 가끔 봤던 유튜버인 것은 큰 차이가 없을텐데 평소에는 그렇게 잘하는 형식적인 말이 댓글에서는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애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애도한다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 잃은 경험을 한 이후에는 더 어려운 것 같다. 내 슬픔으로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싶고 그 사람의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 순간에 참여하는 것이 난처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다.
내가 신경쓰는 사람이 돌아올 수 없는 이별을 경험하고 있을 때 함께해주고 싶은데 그 순간마다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정말 모르겠다. 입을 함부로 열 수도 없고 손과 팔을 맘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렇게 옆에서 그냥 가만히 서 있었던 적도 있다. 그 당시엔 아마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지금은 형식적인 말도 하고 손도 잡아주고 팔을 열어 안아주기도 하지만 이별을 경험한 사람을 마주한 나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못한 것 같다. 아직도 애도에 대해 모르겠고 뭘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형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애도의 한계인 것 같아서 그렇게 행동한다. 애도는 뭘까
그만큼 작성자 분이 생각이 깊으시다는 것 아닐까요? 애도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고 봅니다. 혐오의 시대에서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태도 만으로도 타인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예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픔을 저울에 올리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며 타인의 심정을 나의 뜻대로 해석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곁에 있는 것 또한 또 다른 애도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