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을 떠나 서울로 향한 것은 도약이었을까, 도망이었을까?
익숙했던 곳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도했고, 내가 가진 능력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내디딘 발걸음이었다고 바라본다면 도약이다. 하지만 척박한 길을 개발하기 위한 개척자의 여정에서 바라본다면 도망이다.
정해진 길을 찾아서 왔다. 누구나 납득할 만한, 그래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길을 들었다.
스스로 고민하기 머리 아파서. 나 스스로 답을 찾아갈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가 만족스러운 길을 선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을 뻔뻔함이 없어서.
자신이 없었나 보다. 내가 내린 선택에 책임질 수 있을 거라는.
그 자신 없음이 부끄러웠다. 안전한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남들이 그어 놓은 줄 위에 서 있을 때마다, 내 삶의 주도권을 내어준 것 같은 헛헛함이 밀려왔다. 도망쳐 왔다는 자책은 자꾸만 떠나온 곳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문득 아스팔트 도로 위에 서서 발밑을 지그시 바라본다. 비록 출발선은 두려움을 피해 내딛은 자리였을지라도, 지금 이 길 위를 딛고 서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누군가 그려 둔 지도 위에 서 있다고 해서, 그 위를 흐르는 내 시간과 호흡까지 타인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
이제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왜 이곳으로 흘러왔는가'가 아닌, '이 정해진 틀 안에서 나는 어떤 시선과 색깔을 남길 것인가'를 묻기로 한다.
비록 모래사장만큼 선명한 발자국을 남길 수는 없지만,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속도로 걸어갈지, 그리고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는 것은 나뿐이다.
출발선을 제멋대로 그리는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오늘 하루를 달려낸 숨찬 가슴은 오롯이 나의 체력이 될 것이다.
난 여전히 나로 살아갈 것이다. 아스팔트 숲에서 나무 그늘을 발견할 것이고, 한강에서 짠내를 맡을 것이며,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도망친 적 없는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