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짧은 글에 내 인생을 전부 담을 수 없는 법이지
아주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나는
일찍이 자립하여 해외에 나와 혼자 살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정형화되어 있는 길을 혐오했다
남들 다 하는 입시, 남들 다 가는 대학교
그 후에는 역시 취직
그 뻔히 보이는 미래가 나에게는 공포였고
그렇게는 살기 싫어서 그 길에서 탈주했다
대학교 대신 선택한 타국으로 향하는 편도 항공권
타국으로 가 먹고살기 위해 돈을 주는 아무 일이나 구해 이래저래 살고 있다
돈에 쫓겨 하루하루를 살고 ‘이 시간들’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다
‘이 시간들’, 청춘
영화나 책,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들이 나의 나이대인 청춘을 정말 아름답게 묘사하던데
나의 청춘은 왜 이럴까
왜 이리 척박하고 암담할까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푸를 청, 봄 춘
어쩌면 청춘이란 단어는 내 인생보다
매체들이 표현한 그 아름다움에 더 어울리는 단어인 듯하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청춘이 있긴 한 걸까?
엇비슷한 시기를 지내 본 사람으로서. 봄이라고 모든 날이 푸르진 않으며, 봄날이라고 모든 날이 따뜻하지는 않습니다. 되려 청사과님 말처럼 앙상하고 아픈 날이 더 많은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에서야 되돌아 본 그 시절은, 분명히 빛났다는 것입니다. 꿈꿀 수 있기에, 희망할 수 있기에 그 나이를 청춘이라고 하나봅니다. 또다른 분명한 것 한가지는, 청사과님의 하루 속에 분명 새순 같은 작고 푸른 잎사귀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춘은 생각보다 깁니다. 청사과님은 지금 출발선에서 멀지 않아서 잘 와닿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