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시려나요. 햇살이 창틀 위로 조용히 번지는 방 안일 수도 있고, 창밖 풍경이 느리게 흘러가는 버스 안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겨우 숨을 돌린 저녁 식탁 앞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이 어느 곳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어렴풋이 알 것만도 같습니다. 지금 당신이 머무는 그 자리에도, 아직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은 행복 하나쯤은 조용히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을요.
우리는 늘 행복을 조금 먼 곳에 두고 살아가는 데 익숙합니다. 원하는 대학이나 회사에 합격하면, 업무가 조금 손에 익으면,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 오래 바라던 목표를 이루면 그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일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은 분명 우리를 성장시키는 소중한 마음이니까요. 하지만 행복을 오직 미래에만 맡겨 둘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깃들어 있는 소소한 행복을 잊어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늘 언젠가 도착할 행복을 위해 잠시 견뎌야 하는 시간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삶은 이상하리만치 거창한 순간보다 평범한 날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별한 날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지만, 이름 붙일 일 없는 하루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오래 기억하는 순간들 역시 반드시 대단한 순간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친구와 나눈 짧은 대화나 가족과 함께 먹었던 평범한 저녁처럼, 그때는 미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들이 시간이 지난 뒤 더욱 선명하게 남아 있곤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관심을 두고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야 하는 곳은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평범한 하루 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세기의 가톨릭 영성가 토마스 머튼은 평생을 수도원에서 침묵하며 진리를 탐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과 거리를 둔 채 기도와 묵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장 깊은 깨달음 역시 고요한 수도원 안에서 찾아왔으리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바꾸어 놓은 순간은 의외로 켄터키주 루이빌의 번잡한 거리 한복판에서 찾아왔습니다. 자동차가 오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바쁘게 걸어가던 그 소란스러운 거리에서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 순간 머튼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리가 수도원의 높은 담장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곁을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 이미 충만하게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훗날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한 채, 늘 더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비로소 달라졌던 것이지요. 참으로 흥미로운 일화입니다.
물론 글쓴이 본인이 신학교에 다니는 학생이기는 합니다만, 이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던 것은 거창한 종교적 의미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십일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머튼과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복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행복은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쳐 버립니다. 어쩌면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좋은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좋은 것을 알아보는 마음의 감각이 조금씩 무뎌졌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아침에 창문을 열었을 때 얼굴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 따뜻한 머그잔을 감싸 쥔 손끝의 온기, 점심시간 잠시 올려다본 푸른 하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한 노을 같은 것들. 그것들은 너무 흔해서 특별하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하루를 조금만 천천히 들여다보면, 삶은 그런 사소한 장면들을 한 겹씩 포개며 우리를 살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발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발견은 거창한 결심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잠시 걸음을 늦추고, 무심히 지나칠 수 있었던 풍경 앞에 한 번 더 시선을 두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반복되는 하루가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감사할 이유가 되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방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반드시 더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가진 것의 의미를 깊이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자신의 삶 안에서 더 많은 풍요를 누리기도 합니다.
오늘 하늘이 참 맑구나.
따뜻한 밥 한 끼가 이렇게 든든한 것이었네?
이 계절의 바람은 생각보다 참 다정하구나!
이처럼 마음속에서 조용한 감탄 하나가 피어오르는 순간, 평범했던 하루는 더 이상 견뎌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음미하는 시간이 됩니다. 행복은 거대한 사건이 찾아왔을 때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평범한 순간 속에 담긴 의미를 발견할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삶은 특별한 순간들의 연속이라기보다, 평범한 순간을 특별하게 바라본 기억들의 모음집일 테지요.
물론 우리 앞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미래는 여전히 선명하지 않고, 어떤 날은 눈앞의 걱정이 모든 풍경을 흐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루를 무사히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럼에도 삶은 늘 거창한 사건만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시 살아갈 힘은 아주 작고 평범한 것들에서 찾아오곤 합니다. 별것 아니라고 지나쳤던 순간들이 시간이 지난 뒤 우리를 가장 오래 위로하는 기억으로 남기도 합니다.
이 글을 덮고 다시 당신의 자리로 돌아가실 때, 잠시 주변을 둘러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창가에 번지는 햇살이어도 좋고, 책상 위에 놓인 머그잔이어도 좋으며, 곁에 있는 누군가의 웃음이어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한마디만 읊조려 보시는 건 어떨지요.
와우-! 이거, 참 좋네!
어쩌면 행복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대교나 기독교의 전통에서는 상대의 평안함을 바라며 샬롬이라는 히브리어 인사말을 건네곤 합니다. 당신의 하루가 온전히 평안하기를 마음 깊이 바라며 그 인사말로 이만 글을 줄입니다. 샬롬! 부디-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