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시시콜콜한 불평을 나누며 새벽을 채웠지만, 이제는 얼굴조차 선명하지 않은 이름들과 언제 찍었는지 모를 사진들. 고민 없이 '삭제' 버튼을 누른다. 몇 번의 터치로 몇 년의 시간들이 화면 속에서 가볍게 증발한다.
흔히 시절인연을 한 객차에 올랐다 흩어지는 승객에 비유하곤 한다. 각자 내릴 정차역이 달랐을 뿐이니 아쉬워할 필요 없다고. 그저 나라는 정류장을 잠시 거쳐 갔을 뿐이라고. 그 말은 제법 그럴듯한 위로가 된다. 실제로도 내 삶이라는 궤도에 잠깐 머물다 무덤덤하게 하차해 버린 이들을 지워내는 일은, 이토록 싱겁고 아무런 잔향도 남기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그립지도, 원망스럽지도 않다. 그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는것이니 그저 고마움만있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엄지손가락이 당신 사진 앞에서 멈칫한다. 지우지도, 그렇다고 선뜻 누르지도 못한 채 허공을 맴도는 손가락. 누구나 그저 스쳐 지나가는 승객일 뿐이라는 그 위로가, 이 묵직한 이름 하나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당신은 내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으면 했는데. 삭제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밀려오는 기억을 되짚어보다 문득 깨달았다.
아, 당신은 내 열차에 잠시 머물다 떠난 승객이 아니었구나.
한때 나를 어디론가 마구 끌고 가던 기관사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