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로 산 차를 마셔 보겠다는 들뜬 마음에 팔팔 끓는 물을 그대로 부었던 적이 있습니다. 주전자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을 바라보며 그 뜨거움이야말로 가장 좋은 맛을 이끌어낼 것이라 믿었던 탓입니다. 그러나 잠시 뒤 잔 속을 들여다보니 맑고 연한 비취빛이어야 할 찻물은 탁하게 변해 있었고, 한 모금을 머금자 떫고 거친 맛이 오랫동안 입안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카탈로그를 펼쳐 보니 그 차는 뜨거운 물보다 조금 낮은 온도에서 비로소 제 향을 드러내는 차였습니다. 물을 조금 식혀 천천히 우려야 은은한 향과 고운 빛을 내어준다고 적혀 있었지요. 좋은 차를 마시고 싶었던 조급한 마음이 오히려 찻잎을 데어 버린 셈이었습니다.
차를 오래 마신 사람들은 뜨거운 물을 곧장 찻잎 위에 붓지 않는다고 합니다. 먼저 숙우에 물을 옮겨 담아 잠시 열기를 식히는 과정을 거친다고 하더군요. 생각해 보면 숙우는 찻잎이 다치지 않도록 돕는 그릇인 동시에, 물이 자신의 뜨거움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돕는 그릇이기도 합니다. 그 짧은 머무름 덕분에 물은 비로소 찻잎을 상하게 하지 않고, 그 안에 머물러 있던 향과 빛을 조용히 이끌어 낼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찻잎이 가진 향을 깨우는 것은 더 뜨거운 물이 아니라, 자신을 조금 낮추어 찻잎에게 다가갈 줄 아는 물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뜨거운 물이 좋다 하여 모든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부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인 것처럼, 상대를 아낀다 하여 내가 가장 좋다고 믿는 방식을 상대에게 그대로 건네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오래 품어 온 생각을 쉽사리 내려놓지 못합니다. 시간이 쌓일수록 그 생각은 더욱 굳어지고, 굳어진 생각일수록 그것을 의심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아끼게 되는 순간이면 우리는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서둘러 건네고 싶어집니다. 겪어 보니 좋았던 것, 오랜 시간을 지나며 비로소 귀하게 여기게 된 것을 상대도 하루빨리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피어오르는 까닭입니다.
문제는 그런 마음이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상대에게 닿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며 자녀의 시간을 앞질러 답을 내어놓고, 어떤 사람은 오래된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충고를 건네기도 합니다. 또 어떤 연인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마음이 열리는 속도를 재촉하기도 하지요.
우리는 흔히 진심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진심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아름답게 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힘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곤 합니다. 말에 담긴 진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지닌 마음의 모양이 저마다 다른 탓이지요.
돌이켜 보면 사람 사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조금 늦게 건네는 말, 한 걸음 물러서는 태도, 상대가 자신의 속도로 걸어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는 시간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필요한 것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잠시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맞다고 믿어 온 생각이나 방식을 내려놓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거두어들이는 순간, 마치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거나 상대를 향한 내 진심마저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이 슬며시 고개를 들곤 합니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서툴러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테지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참 좋아합니다. 개봉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작품임에도,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영화이지요. 영화 속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
생각해 보면 사람 사이의 많은 어려움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곤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상대의 모든 마음을 알 수 없고, 때로는 가장 아끼는 사람조차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곁에 머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끝내 알 수 없는 부분까지도 그 사람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차가 제 온도를 찾은 물을 만났을 때 비로소 제 향을 내어놓듯, 사람 역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관계 안에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가 누군가를 아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라기보다,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함께 품어 가는 일이 아닐까요?”
혐오를 관통하는 글같아요.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영화가 궁금해집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님이 문득 떠오르네요. 멋진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