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기적으로는 좋지 못한 기억력을 가졌다. 공연히 결심하고서 일어나면 잊힐 다짐을 허공에 쏘아보낸 일이 잦다. 그것이 역설적이게도 나를 글 쓰게 만든다. 내 지난 날들은 눈 뜨면 잊는 꿈- 이란 그녀들의 노랫말은 이 상황과도 꼭 들어맞는다는 것이 웃기다 어처구니없이. 그 노랜 마침 오늘 오후에 들었는데. 그런 까닭에 최정훈이 이따금씩 모닝페이퍼를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일어난 직후 몇 분동안 저항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어느 지식인이 말했던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꽤나 울적한 샤워시간을 보내는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는 것은 이미 스스로 증명했다). 내 무의식은 불안과 핍박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그곳엔 애정이 들이칠 공간이 없다. 사람이 감상적이면 눈물부터 흐른다. 눈에서 물이 나오면 그것은 그것대로 해소와 승화의 성격을 가지는 때도 있겠지만 어떤 날에는 깊이 침잠한다. 내가 글쓰기를 너무 어렵게 생각했던가. 글쓰기가 마치 내 보잘 것 없는 일상에 구원이라도 되려는 양 굴었던 걸까. 좋아하는 것들을 더 좋아해보자. 나의 정원을 끌어안기에도 벅찬 팔다리를 가져보자. 내일 아침은 일찍 일어나 찬물 샤워를 마치고선 책상에 앉아 차를 끓여 먹어야겠다. 왠지 귤도 먹고 싶다. 명상을 해도 좋을 것 같고 라디오를 틀어놔도 괜찮겠다. 이것도 결국 지키지 못할 내 이만 번째 이상일까. 유토피아는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이다. 내일이 되어보면 알겠지.
- 0804 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