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야구팀은 한때 '왕조'라는 별칭을 등에 업고 리그를 호령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역사에서 한 나라가 멸망하듯이 갑자기 최하위로 추락하고 몇 년간 하위권을 전전했다. (지금은 다시 상위권이니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이 안 좋은 성적을 받는 구단에 붙이는 스포츠 용어인 줄 알았다.
나는 엄청난 경력이 있다. 내가 23살인데, 아마 또래 사람 중 상위 1% 정도만이 가졌을 경력이다.
처참하게 무너져봤다. 이 경험은 단순히 실패라는 그릇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뜨겁고, 양이 많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이따금 영향을 끼칠 정도니.
이 암흑기를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
당시 나는 이성을 잃었었다. 과장이 아니라 신체에서 뿜어내는 사소한 움직임 하나도 내 뜻대로 제어할 수 없었다.
발표할 때면 다리의 뼈 마디마디가 춤을 췄고, 시험 시간에는 그 춤사위가 손으로 전이되었고,
원어민 선생님이 내게 공개적으로 질문을 할 때는 마치 K-2 소총을 내 심장에 겨누는 군인처럼 느껴졌다.
좋은 친구들의 도움과 신뢰는 내 마음을 항상 아슬아슬 붙잡았지만 너무나 버거웠던 상황에
엄마에게 병력 지원을 요청하듯 울부짖으며 전화하고 도망쳤다.
그렇게 나의 내비게이션은 2021년 3월 24일 오후 2시경, 처음으로 경로를 이탈했다.
그즈음 있었던 일들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에 몰래 학교에 찾아가서 보거나
유대감의 상실로 공허한 빈속을 음식으로 과도히 채웠었고
가족의 신뢰마저 잃었던 몇 달간은 집 앞 공원에서 부모님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집에 들어갔던
몇 개의 에피소드들이 떠오를 뿐이다.
이 일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최근 2년간 종종 고민했던 것 같다.
생활하다 보면 10대의 마지막과 20대의 시작이 멈췄었기에 사람들과 공유되지 못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열정보다 가질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이 여전히 크다.
그리고 어쩌면 이 감정은 죽음을 마주할 순간까지 유지될 것이라는 확신도 든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그날 이후의 시간을 지우거나 바꾸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대신 그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 법은 조금씩 배우고 있다.
잃어버린 계절은 끝내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어쩌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 적인 성향을 보여서인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이라는 작품을 빚는데 어떠한 흠집도 나지 않았으면 좋겠기에,
이미 생긴 자국을 보고 '아 망했어.' 포기해 버리고 방치하는 그런 사람.
'리셋' 버튼이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망상에 현재에 살기를 포기해 버리는 그런 사람.
꽤 많을 거로 생각한다.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이건 일단 시작하면 중지 버튼 따윈 없는 게임이다.
그렇기에 잔인하고 치사하지만, 그렇기에 아름답고 의미가 생긴다.
내 코가 석 자인 사람이지만, 나 같은 수많은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면 좋겠다는 주제넘은 바람이 있다.
아마 이 글은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처음 적어 본 문장들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