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이나 더웠던 올여름이 어느덧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거하고 계신 곳에도 부디 안온함이 깃들어 있기를, 이 계절의 끝자락을 무사히 건너고 계시기를 먼저 마음 담아 빌어봅니다.
이제 곧 짧은 가을이 스쳐 지나갈 테고, 이윽고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두꺼운 코트와 목도리를 꺼내 입는 계절이 찾아오겠지요. 한여름의 달콤한 수박과 차가운 음료를 맛보려면, 짙은 초록을 품은 청량한 풍경을 다시 마주하려면 또 일 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매일같이 덥고 습하다며 은근히 투덜거리던 여름이었는데, 막상 떠나보낼 때가 되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헛헛해집니다.
여름은 굳이의 낭만이 퍽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더운 날씨를 견디는 일이 결코 유쾌한 것만은 아니지만, 이마에 땀을 흘리며 걷다가 마주하는 처마 밑 그늘의 시원함에는 여름만의 독특한 맛이 있습니다. 수박을 와작 깨물어 먹다가 손등으로 과즙을 닦아내는 일도, 늦은 밤까지 창밖에서 들려오는 벌레 소리를 듣는 일도 그렇습니다. 차가운 유리컵 표면에 투명하게 맺힌 물방울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할 것 없는 장면들이지만, 계절이 지나고 나면 그런 순간들이 문득 마음을 흔들어 놓을 것만 같습니다.
그리하여 남은 여름 동안은 조금 더 부지런히 이 계절을 보내보려 합니다. 마음껏 땀도 흘려보고, 뜨거운 햇살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 보겠습니다. 수박도 원 없이 먹고,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매미 울음소리도 조금 더 귀에 눌러 담아두렵니다.
오늘은 박명수의 「바다의 왕자」를 오랜만에 꺼내 들어야겠습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조금은 더운 길을 천천히 걸어볼 작정입니다. 굳이 이 더위에 왜 걷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웃어넘길 뿐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그렇게 걷고 싶습니다. 노래가 끝날 때쯤에는 옷자락에 땀이 흥건하게 배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스물셋의 여름이 이렇게 저물어갑니다.
먼 미래의 나는 과연 스물셋의 여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었으며, 밤마다 어떤 고민을 하며 잠들었는지 전부 떠올릴 수 있을까요.
아마 모든 순간을 기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금의 나 역시 지나온 시절의 수많은 날들을 잊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다만 몇 개의 선명한 장면은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흘렸던 땀방울,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의 달콤함, 해 질 녘 바람에 섞여 들리던 매미 소리, 그리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홀로 걸었던 어느 골목길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러니 남은 여름 동안은 마음을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햇살이 좋으면 조금 더 오래 걸어보고, 목이 마르면 시원한 음료 한 잔을 사 들고 천천히 마셔보아야겠습니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실컷 먹고, 밤이 늦더라도 매미 소리가 들려온다면 잠시 창문을 열어 그 소리를 들어보아야겠습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가는 일이 있다면 한 번쯤은 굳이 해보아야겠습니다.
가을이 오면 분명 이 뜨거웠던 여름을 그리워할 테고, 겨울이 오면 쓸쓸한 가을의 냄새를 그리워할 겁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여름이 다 지나간 뒤에야 아쉬워하기보다, 아직 내 손끝에 남아 있는 이 계절을 조금 더 마음껏 사랑해주려고 합니다.
조금 덥고 땀이 나더라도 괜찮겠습니다. 목이 마르면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시면 그뿐입니다. 괜히 싶은 일을 하나쯤 더 해보면서, 남아 있는 스물셋의 여름을 천천히 누려보겠습니다.
언젠가 무척이나 그리워할 오늘이라면, 적어도 오늘만큼은 마음을 아끼지 않고 온전히 살아두어야겠습니다.
스물셋의 여름이 다 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