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은 버림이다"
어떤 청년의 글에서 그 문장을 읽고 멈추었다.
그는 외롭다고 말했다.
"자신과 단둘이 있는 시간이 힘들고 혼자 있는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어렵다”고.
청년은 그 외로움을 피해 지금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모임에 나가고, 관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 집에 돌아오면 다시 외로운 자신과 만나야 한다.
그가 원한 건 배움일까, 사람들이었을까?
사실"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관계가 끝날 때마다, 이별이 찾아올 때마다 '헤어짐=버림받음'이라는 상처의 공식이 발동하기 때문이진 않을까?
그 공식을 바꾸기 위해 “외로우면 마음 을 꺼내놓으세요” 라는 조언은 위험하기만 했다. “외로움을 꺼내놓으면 놓을수록 더욱더 외로워지네요.” 라는 아픔의 반응이 나오게 되니…
“감정을 표현하세요. ” 라는 이야기를 나 역시 자주 하기도 한다. 감정을 명명하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해결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하지만 배고픈 사람에게 “배고픔을 말해보세요” 한다고 배고픔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외로움은 감정이 아니라 결핍의 경험인가 보다.
외로움을 말한다고 외로움을 분석한다고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그냥 함께 있어줄 사람이 필요한것이다.
나에게 외로움은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보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에 더 가까운 감정이다.
어느 날 겨울비가 내리던 1월 J가 그렇게 갑자기 떠나고 나는 가슴이 쓰리고 먹먹해졌다. 참아낸 눈물은 머리로 흘렸다.
그리고 J가 홀로 담배를 피던 벤치앞을 지날 때면 그가 아직도 혼자 고독하게 앉아있는 것만 같다. 길을 걷다 비슷한 키와 덩치의 사람이 스쳐가면 온몸에 소름이 돋아 멍하니 다시 확인하곤 한다.
남겨진 J의 카드내역서. 그 속에는 담배, 아이스크림, 치킨, 피자…늘 보던 일상의 흔적들 앞에서 결국 눈물이 터지고야 만다.
나는 이 아픈시간이 사라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 슬픔 속에는 분명 상실이 있지만 동시에 사랑했던 시간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직 네가 있다는 증거이니까 그 증거를 오래도록 간직하련다. 너를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문득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내가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는 없을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렵고 언제나 알 수 없는 일이고 참 쓸쓸한 일이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한다.
나에게는 J가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J를 사랑한 줄은 떠난 후에야 알았다. 그 쓰라린 외로움때문에…
사랑에는 언제나 쓸쓸함과 외로움이 따라다니나 보다.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고 싶은 마음과 언젠가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그래도 괜찮다. 어쩌면 외로움은 사랑의 반대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랑이 남기고 간 흔적에 가깝다.
누군가를 사랑해 본 사람만이 외로울 수 있고,
누군가와 진심으로 연결되어 본 사람만이 그리워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외로움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려고 한다.
외로움은 실패한 관계의 증거가 아니다. 내 삶에 누군가를 격렬하게 사랑했고, 또 사랑받았던 내 시간의 가장 다정한 증거, 즉 <관계가 남긴 선물>이다.
비록 세상이 모든 빛을 잃어버린 것 같은 이별이 찾아온다 해도 나는 기꺼이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이별이 두려워 사랑하지 않는 삶보다,
상실의 아픔을 겪더라도 기꺼이 사랑했던 삶이 더 아름답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외로움은,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