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2번의 결혼 생활 끝에 현재 동창회에서 다시 만난 첫사랑과 10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
첫사랑이라고 해서 아름다울 건 없고 아빠가 2번째 결혼 생활 중 동창회에 나갔다 바람이 났다
아빠는 인테리어 일을 해서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돈을 꽤 벌었는데 바람과 동시에 쫄딱 잃었다
술만 마셨다 하면 난 이 나이를 먹도록 내 집 하나 없다고 하소연 그러면 바람 피우지 말았어야지라는 말을 내내 삼켰다
주변 말에 따르면 둘은 국민학교 동창이고 아빠가 그분을 좋아해서 그분이 서울 삼성동으로 이사한 이후 아빠가 그분을 만나러 서울까지 걸어갔다고 했다
그분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오래 살다 동생의 권유로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아빠나 그분의 관심사는 오직 돈이었고 둘은 돈 때문에 일비일희하는 날이 잦았다
피 터지게 싸우는데도 서로를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사랑과 동시에 인생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분의 동생은 엄청난 부자여서 거실에 휴대 전화를 놓고 방 안에 들어가면 벨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라고 그분은 입에 침이 닳도록 말을 해 댔다
그분의 동생에게는 쌍둥이 딸이 있었고 그중 한 명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아빠와 그분과 다녀온 적이 있다 휘황찬란하고 꽃도 많고 화려했다
작은아빠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화환을 보냈다고 해서 아빠와 찾아보러 다녔다
작은아빠는 나 어릴 적 사업을 하셔서 꽤나 부자였는데 그러던 중 사업이 잘 안 되어서 이런저런 일을 하시다 현재는 꽃집을 하신다고 했다
즐비한 화환에서 작은아빠의 화환을 찾기란 어려웠고 몇 바퀴를 돌았지만 국회의원 아무개 사업가 누구의 화환만 보였고 그런 화환들은 자랑스레 앞쪽에 전시되어 있었다
축하할 날인데 유쾌하지 않았다 우린 그날 결국 작은아빠의 화환은 찾지 못했고 찾기도 전에 다음 결혼식을 준비한다며 화환들은 사라졌다
아빠는 친엄마 때문에 신용 불량자가 되었고 함께 사는 분 명의가 아니면 혼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일전에 한번 점집에 간 적이 있는데 내 팔자가 너무 세서 친부모가 이혼을 하게 된 것이라고 일러 준 적이 있다 물론 비과학적인 영역이라 이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난 알 수 없다
아빠는 나에게 더 많이 해 주고 싶어 그분과 함께 살게 된 것이라 했고 떠올려 보면 학창 시절 나에게 큰 간섭은 없었다 어쩌면 내가 총 3명의 어머니들과 살게 된 것이 미안해서 더 해 주려고 한 것일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학교 갈 때 무조건 택시를 타고 가라고 카드를 주고 최신 휴대폰으로 휴대 전화를 바꿔 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크고 보니 아빠는 작은아빠가 화환을 보냈던 것처럼 내 기를 세워 주고자 했었던 것일 테고 세상은 보여지는 것에 약하다
이후로 아빠의 사정은 나아지질 않았고 어느덧 환갑을 넘었고 이제 더 이상 아빠가 무섭지도 않고 짠할 뿐이다
말년을 살고 있는 아빠
아빠는 인생에 후회가 없을까 자신의 선택들이 만족스러울까
아빠 내가 없었다면 아빠는 이혼을 안 했을 수도 좀 더 부유하게 자유롭게 살 수도 있었겠다
내 선택은 아니지만 미안합니다
인생이 무엇이며 운명이 무엇이길래 우릴 여기까지 데려왔는가 상처 받은 영혼의 치유는 누구의 몫인가 당신의 기나긴 인고에 나의 작은 경외심을 놓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