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 좋습니다.
던 맥클린의 「American Pie」가 좋다며 갑자기 신이 나서 그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는 사람이 좋고, 한성대입구역 어디쯤에 있는 에그타르트 가게를 알고 있다며 그곳의 타르트가 얼마나 맛있는지, 왜 자기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지 들려주는 사람이 좋습니다.
봄이 오면 올해의 봄은 작년보다 조금 늦게 온 것 같다거나, 여름 저녁에는 해가 늦게 져서 좋다거나, 가을이 되면 괜히 오래된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는 식으로 계절에 관한 감상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좋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자기 앞에 놓인 삶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노래 한 곡이나 에그타르트 하나, 어느 저녁의 바람이나 유난히 길었던 여름날 같은 것을 자기 안에 오래 붙잡아두는 사람. 그것이 왜 좋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고, 그러다 문득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지는 사람.
자기에게 일어난 사소한 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감상을 발견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보다 어떤 것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지가 먼저 궁금해집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꼭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좋아할 필요도 없었고, 대단한 이유가 있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자기는 이 노래가 좋고, 이 음식이 좋고, 이 동네를 좋아하며, 비가 오는 날이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고 늦은 오후에 햇빛이 길게 들어오는 시간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씩 듣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됩니다.
“나는 여름이 좋아.”라는 말 하나만 해도 그렇습니다. 왜 여름이 좋으냐고 묻다 보면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나오고, 방학 때마다 갔던 어느 장소가 나오며,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 어느 여름날이 마주 서기도 합니다. 긴 낮이 좋아서일 수도 있고, 해가 지고 난 뒤의 공기가 좋아서일 수도 있으며,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무언가가 좋아서일 수도 있겠지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여름이라는 계절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새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에 관한 이야기로 바뀌어 있습니다.
별것 아닌 이야기가 다른 기억을 불러오고, 그 기억이 또 다른 사람과 장소를 불러오며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삶 가까이까지 흘러갑니다.
던 맥클린의 「American Pie」도, 한성대입구역의 에그타르트도 결국 그런 이야기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일지도 모릅니다. 노래를 이야기하다 보면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시절과 함께 지냈던 사람이 떠오르고, 에그타르트를 이야기하다 보면 그 가게를 누구와 처음 갔는지, 그날의 날씨는 어땠는지까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단지 노래 한 곡, 디저트 하나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지나온 한 시절을 통째로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그 사람만 알고 있는 노래와 길, 맛과 계절을 하나씩 건네받습니다. 내가 몰랐던 노래를 알게 되고, 가보지 않았던 동네가 궁금해지며, 별 관심 없던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지고, 그냥 지나치던 계절을 누군가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 하나를 만났을 뿐인데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양이 조금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에 조금 더 오래 마음을 쓰게 됩니다. 누군가가 좋다고 했던 노래가 길에서 들리면 한 번 더 귀를 기울이고, 누군가가 맛있다고 했던 가게 앞을 지나면 한 번쯤 들어가보고 싶어집니다. 다른 사람의 감상이 내 삶 안으로 들어오면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오래 어울리고 싶습니다.
좋은 노래를 발견하면 신이 나서 한참 이야기해주고, 맛있는 에그타르트를 발견하면 다음에는 같이 가자고 말하고, 어느 여름 저녁 바람의 감촉을 굳이 꺼내놓는 사람들.
자기에게 중요한 것을 남에게도 중요하다고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큼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음껏 좋아할 줄 아는 사람들 말입니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건네며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고,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며 서로의 삶을 조금씩 넓혀가고 싶습니다. 나만의 세계로만 살아가는 것보다 서로의 세계를 나누어 가지며 살아가는 일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곁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신이 나서 들려주고, 골목의 작은 가게를 발견했다며 함께 가보자 말하고, 계절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며, 별것 아닌 하루를 보내고도 “오늘은 이런 게 좋았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당신의 곁에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고,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주며, 때로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조용히 건네주는 사람들이 당신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당신의 곁에 오래, 아주 많이 머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