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직장도 있다. 물론 지금은 쉬고 있지만, 돌아갈 자리가 있다.
가족도 있다. 지금 이 집에는 아기와 나, 둘뿐이지만 남편도 있고, 내가 만든 가정도 있다.
크게 모자랄 것 없는 인생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꽤나 착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딱히 반항할 이유가 없으면 반항하지 않았고, 남들이 밟아온 길이라면 그 길에 무엇이 있는지 의심하기보다 일단 따라갔다.
연애도 했다.
대학도 다녔다.
취업도 했다.
그리고 직장에서 만난 다정한 사람과 결혼했다.
이쯤 되면 다음 장면은 대충 정해져 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고.
남들이 말하는 행복의 다음 단계로 차근차근 넘어가는 것.
나는 그 전철을 꽤 성실하게 밟아왔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한 번이라도 그 주류에서 크게 벗어나본 적이 있던가.
책을 좋아하고, 남들과 조금 다른 취향을 가진 척하면서도 결국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들조차 대부분 누군가가 이미 좋아하고 있는 것들이다.
나는 비주류가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비주류인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걸까.
소위 말하는 ‘비주류 호소인’으로만 살아온 것은 아닐까.
아이를 재우고 등을 토닥이다가 문득 지나온 시간을 생각했다.
연애도 해봤고, 대학도 다녀봤고, 취업도 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했다.
아이도 낳았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어째 생겨먹은 사람이라 이렇게 허전한 걸까.
이상하다.
내가 원했던 것들이 대부분 내 손 안에 들어와 있는데, 왜 나는 자꾸만 무언가를 놓친 사람처럼 느껴질까.
다들 그러지 않나.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아이를 낳고 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랑을 알게 된다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눈에 넣으면 꽤 아플 것 같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를 보면 귀엽고, 걱정되고, 웃는 얼굴을 보면 나도 웃는다.
아이가 아프면 마음이 무너지고, 잘 먹고 잘 자면 안도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하는 그 엄청난 사랑을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내가 모성애가 없는 걸까.
내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애초에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마저도 남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문득, 혹시 내가 우울한가 싶어진다.
그런데 또 잘 모르겠다.
밥도 먹고, 웃기도 하고, 책도 읽고, 아기를 돌보고, 내일 할 일도 생각한다.
무너진 사람처럼 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까 더 모르겠다.
아픈 것도 아닌 것 같고, 행복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인생에서 한 번도 제대로 나에게 물어본 적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는 뭘 좋아하니.
어떻게 살고 싶니.
무엇을 원하니.
남들이 하는 것 말고,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건 뭐니.
나는 늘 다음 순서를 알고 있었다.
대학 다음에는 취업.
취업 다음에는 결혼.
결혼 다음에는 아이.
그런데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지.
아마 지금 내가 느끼는 허전함은 삶에 무언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다음 단계’를 향해서만 살아온 사람에게 처음으로 생긴 빈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남들이 정해놓은 다음 칸으로 무작정 넘어가기 전에,
한 번쯤은 내 쪽을 돌아보고 싶다.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아마 그걸 알아가는 것부터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밟아보는 전철일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이 생각보다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느낀적 있습니다. 무언가 특별하고 서사가 있을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은 즐거움도 기쁨이 될 수 있구나 느낀 적 있습니다. 너무 멀지 않은 곳에 그 즐거움이 만져지길 기도합니다. 혹 당시에 모르고 지나친다해도 내 가슴 깊이 느낀 것은 떠올렸을 때도 생생히 그 힘을 다해 빛날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