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스타워즈> 시리즈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의 추천으로 그 시리즈를 알게 되었는데, 그걸 시작으로 한동안 스타워즈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아저씨들이 가득한 스타워즈 팬카페에 가입해서 온갖 정모란 정모는 다 찾아다녔고, 용돈을 모으고 모아서 제다이 기사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코스튬과 라이트세이버를 사기도 했습니다. 그것들을 들고 각종 시사회에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별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애송이가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옷을 입고 시사회장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면 조금 우습기도 하지요. 그때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면 얼굴이 조금 화끈거릴 때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절이 부끄럽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의 내가 조금 부럽습니다. 무엇인가를 그렇게까지 좋아하고,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고, 용돈을 모으고, 사람들을 찾아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행복한 일이었던 것 같아서요.
가끔 존 윌리엄스의 스타워즈 메인 테마를 듣습니다. 음악이 시작되면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 음악을 틀어놓고 하루 종일 스타워즈 생각을 하던 어린 내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팬카페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나 확인하고, 다음 정모에는 무엇을 입고 갈지 생각하고, 용돈을 모아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던 아이 말입니다.
그때는 그것들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좋으니까 했던 일들이었으니까요.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그것을 더 알고 싶었고, 더 보고 싶었고,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하루가 조금 더 즐거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행복이라는 것이 꼭 그렇게 복잡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하나 있고, 그것을 좋아할 시간이 있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조금 들뜨는 것. 그 정도면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에도 조금의 용기가 필요해졌습니다.
아마 나이가 들면서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너무 좋아하지 않는 법, 너무 기대하지 않는 법, 너무 실망하지 않는 법, 마음을 다 내어주지 않고도 적당히 관계를 이어가는 법 같은 것들을 하나둘 배우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는 좋아하는 마음에도 제동을 걸 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너무 좋아하면 그것을 잃었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할 마음도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무엇인가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면 다른 것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예전처럼 곧장 그쪽으로 달려가기보다 잠깐 멈춰서 이것을 좋아해도 되는지, 좋아하는 데에 이만큼의 마음을 써도 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을 아껴 쓰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나서야 오히려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내가 지나온 시간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마음을 적당히 썼던 날들이 아니라 마음을 온통 써버렸던 날들이라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의 내가 스타워즈 하나에 빠져서 팬카페를 찾아다니고, 용돈을 모아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옷과 라이트세이버를 사고, 그것을 들고 시사회에 가던 날들이 그렇습니다. 나는 이제 그 라이트세이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때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도 대부분 잊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내가 스타워즈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아직 기억납니다.
좋아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하루가 그렇게 즐거울 수 있었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도 앞으로 며칠이 기다려지던 때가 있었다는 것. 돌이켜보면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은 대개 그런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스타워즈 음악을 들으면 그때의 내가 생각나곤 합니다. 아나킨이 좋았고, 푸른빛 라이트세이버가 좋았고, 영화가 좋았고, 그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았던 아이. 그 아이에게는 좋아하는 데에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고, 그것을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좋으니까 좋아했습니다.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다만 나는 이제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때보다 아는 것도 많아졌고, 생각하는 것도 많아졌고, 사람의 마음이 생각보다 쉽게 다칠 수 있다는 것도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까요.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때로는 나를 조금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었다가 거절당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가 잘되지 않을 수도 있고, 한참 좋아했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시들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나보다 조금 더 조심스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을 아껴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금 두렵더라도 좋아하고 싶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고,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고, 마음에 드는 노래를 발견하면 혼자 듣고 지나가기보다 누군가에게 이것을 들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좋아하는 마음을 없는 것처럼 감추기보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만큼은 내가 먼저 인정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조금 우스운 마음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왜 그렇게까지 좋아했을까 싶은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지금의 내가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에 한참 마음을 빼앗겨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혼자 신이 나서 한참 늘어놓기도 하고, 굳이 돌아가지 않아도 될 길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돌아가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조금 더 선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좋아하는 마음을 너무 아껴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전처럼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가 될 수는 없겠지만, 좋아하는 데에도 조금의 용기가 더 필요한 사람이 된 만큼 그 용기를 내보면서 살고 싶습니다. 마음을 다 썼다가 조금 다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을 다 쓰지 않은 채 지나간 것을 나중에 아쉬워하는 것보다는 그편이 나을 것 같아서요.
여러분에게도 무언가를 마음 다해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매일 듣던 노래가 있었을 수도 있고, 몇 번이고 찾아보던 영화가 있었을 수도 있고, 별것 아닌 이유로 괜히 좋아했던 장소가 있었을 수도 있고, 아직도 이름만 떠올리면 마음 한쪽이 조금 이상해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무엇이었든 좋습니다. 한때 그렇게까지 좋아했던 것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또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때는 조금 덜 망설였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나이가 되었지만, 좋아할 수 있을 때는 마음껏 좋아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마음까지 아껴두며 살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삶이 조금 짧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