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적어도 세상이 매겨 놓은 값어치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렇다.
가령, 쿰쿰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가을 낙엽 무더기라든가,
움직이는 것인지조차 헷갈리는 구름을 바라보는 일이라든가,
길 잃은 골목에서 마주한 낯선 풍경과 식당 같은 것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허름한 폐주유소라든가,
허름한 구멍가게에 진열된 먼지 쌓인 장난감들이라든가,
낯선 나라에서 잘못 주문한 형편없는 요리 같은 것들.
아무데나 세워진 녹슨 바퀴의 자전거라든가,
중구난방한 색의 오래된 벽돌 건물이라든가,
아무도 멈춰 서지 않는 도로가의 들꽃 군락이나
외진 방파제 풍경 같은 것들.
초점이 엇나간 사진이라든가,
비 내리기 직전의 흙내음이라든가,
세월이 피부에 맞닿는 구제옷을 사는 일이라든가,
이제는 너무 낡아서 켜지지도 않는 전자기기 같은 것들.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이 목록에 누군가
‘왜 하필 그런 걸?’이라고 묻는다면
명쾌하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나조차도 내가 이것들을 왜 그리고 언제부터
마음에 새겼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불완전함과 시간의 흐름에 대한 집착일까?
필연적으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미련일까?
실수와 우연으로 점철되어 흉내 낼 수 없는,
볼품없지만 고유한 것들이 마음에 새겨지는 이유가.
아니면 지독한 자기애인가?
우연히 마주한 풍경을 담은 사진에 뿌듯해하고,
실수가 녹음된 자작곡을 돌려 들으며 잠에 들고,
우연히 발견한 카페의 커피 맛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것이.
나는 그런 것들에게서 내 모습을 비쳐 보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불완전을 사랑했던 것이
나를 안주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작곡의 완성도에 연연하지 않고,
우연을 핑계로 무계획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도 앞에서 금세 시들해져도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있었으니까.
세상과 엇갈린 나의 사랑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것들 앞에 서면
어쩐지 숨이 턱 막혀 온다.
더 이상 손댈 곳이 없다는 건,
어쩌면 차갑게 박제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반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어설픈 것들에는
사람의 체온과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조금 틀리고 균열이 가 있어야
비로소 생명이 스며들 틈이 느껴진다.
세상은 박제된 완벽을 예찬할 테지만,
나는 서툰 틈새로 삐져나오는 것이 세상 뒷문의 열쇠라 믿는다.
어쩌면 나는 불완전의 해일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은 원래 어설픈 것 아니던가.
나는 그것을 온전히 마주하고 사랑하게 됐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