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시절 일 년 하고도 두 달 선임이었던 도윤이 형에게 생일을 축하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형이 전역한 지도 벌써 이 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짧은 축하 한마디였는데 이상하게 그 시절의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형이 전역하기 전까지 함께했던 네 달도 생각났고, 그때 형에게 많이 혼났던 일들도 생각났습니다.
사실 나는 형에게 좋은 후임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형이 나를 혼낼 만한 일도 꽤 많았습니다. 그때는 내가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형의 눈에는 부족한 것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혼났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혼나는 일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 부분보다 부족한 부분만 보는 것 같아 서운했던 적도 있었고, 왜 굳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나 싶었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생활을 마치고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의 일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형에게 혼나고 나면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했고, 내가 맡은 일을 더 신경 쓰게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적당히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 더 제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형이 전역할 무렵에는 나도 처음 군대에 들어왔을 때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과정에서 형의 훈계가 꽤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을 훈계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형은 내가 잘못하는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형이 나에게 해줄 수 있었던 가장 현실적인 관심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은 쉬웠을 테지만,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고 다시 하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더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 생일 축하 연락이 더 묘하게 느껴졌습니다. 한때는 나를 가장 많이 혼내던 사람이었는데, 그 형이 이 년이 넘도록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형에게 나는 그리 좋은 모습만 보여준 후임이 아니었을 텐데도 말입니다. 오히려 형이 기억하는 나에게는 내가 지금 떠올리기에도 조금 부끄러운 모습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형은 그런 나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생각해보면 사람을 좋아하고 아끼는 방식이 꼭 다정한 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때에는 잘했다고 말해주는 것이 마음일 수 있고, 어떤 때에는 잘못했다고 말해주는 것이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에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두 말이 결국 같은 곳에서 나온 것일 때도 있습니다.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말입니다.
그때의 나는 형이 나를 혼내는 것이 싫었고, 형이 전역하는 날만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참 이상합니다. 그때는 빨리 끝났으면 했던 시간이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니 그때 들었던 말들이 오히려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을 기억하지는 못해도, 자신을 조금 바꾸어놓은 말은 오래 기억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형은 그 시간을 지나온 나에게 여전히 생일 축하를 건네고 있습니다. 나는 형이 나에게 해준 훈계가 고맙고, 지금까지도 나를 기억해준다는 것이 고맙습니다. 어쩌면 두 가지는 별개의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혼낼 만큼 나에게 마음을 썼던 사람이고, 시간이 지나도 내 생일을 기억할 만큼 나를 잊지 않은 사람이니까요.
나도 살면서 그런 사람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누군가의 좋은 모습만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족했던 모습도 알고 있으면서 그 사람을 여전히 좋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필요할 때는 잘못했다고 말해주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생일을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이 그때의 나처럼 조금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그 사람을 오래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생일 축하한다는 짧은 연락 하나를 받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사람 사이에서 오래 남는 것은 대단한 사건보다 이런 작은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듣기 싫었던 말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위한 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생일 축하 한마디가 오래 지나도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나도 형의 생일을 기억해두어야겠습니다. 언젠가 형에게 먼저 연락해서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때 굳이 군대에서 나를 얼마나 많이 혼냈는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냥 잘 지내고 있느냐고, 생일 축하한다고, 그때 많이 혼났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덕분에 군생활을 잘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형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별것 아니라는 듯 웃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는 꼭 한 번 말하고 싶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형이 나를 혼냈던 것도 나를 생각해서였고, 지금까지 내 생일을 기억해주는 것도 나를 생각해서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고.
시간이 지나야만 알게 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때는 잔소리였던 말이 고마운 말이 되기도 하고, 지나간 줄 알았던 사람이 여전히 내 삶 한구석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 사실이 참 고맙습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시간이 오래 흐른 뒤 돌아보아도 고마운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