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가 되고 싶다. 넓고 깊어서 무량한, 비에 젖지 않는 바다가 되고 싶다. 비가 와도, 거센 풍랑이 몰아쳐도 그것은 바다의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고, 바다는 그것들을 삼키고서 적막하다. 하물며 더 먼 바다에서는 그런 풍랑조차 없는 소식이 되리.
물 같은 사람, 베이는 일이 없고, 유연해서 꺾이거나 부러지지 않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살점과 뼈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베이거나 부러지고 싶지 않다니, 대단한 오만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베이고 싶지 않아서, 부러지고 싶지 않아서 나는 갑옷을 입기 시작했다.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갑옷들은 나를 보호해주었다. 나는 나의 이러한 갑옷들이 나를 지키면서, 또 당신을 지키길 바랐다.
사실 나의 갑옷은 그다지 단단하지 않다. 쇠는 충분히 담금질되지 않았고, 들고 있는 칼은 무디다. 나는 나의 허약함을 인정하되, 다만 더 강건해지고 싶을 뿐이었다. 당신은 나의 갑옷을 벗기려고 낑낑거렸고, 나는 당신을 잃기 싫어서라도 일부를 벗어두어야 했다. 당신은 나의 갑옷이 되고 싶어했던 것 같지만, 그 자리는 항상 헐겁고 버거웠다. 그것은 당신의 의도와는 다른, 나의 결핍이었다. 나는 당신이 강해지길 바랐지만, 그것이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고, 내가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은 일방통행도 아니고, 희생의 산물도 아닐진대, 상처난 부분을 계속해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밀실을 확보하고자 했다. 나의 이러한 밀실은 아마도 개방불가능성의 밀실이고, 침범불가능성의 밀실일 것이다. 이제는 나에게 공간을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