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동네들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나의 청춘이, 젊음이, 그해 서교동이, 또 치기 어린 시절들이 가득한 그곳. 마포구다. 나의 첫서울살이가 마포에서 시작되었던 만큼 알게 모르게 정이 가는 동네다. 그래, 종로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동네. 아니, 종로보다 더 끌리는 마포. 오늘은 마포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보려고 한다. 마포는 그렇다. 종로와 마찬가지로 마포 또한 유행 심하게 타지 않고 잔잔하게 오래 가는 스테디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는 동네이긴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종로보다는 트렌디함이 조금 더 묻어난다. 그러는 와중, 역설적이게도 종로보다 조금 더 사람 사는 느낌이 든다. 종로는 비유 차원에서 말하는 '사람 사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반면, 마포에는 실질적인 의미에서 '사람 사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곳저곳 원룸과 오피스텔이 많아서일까.
아무튼 마포는 종로보다 유행에 민감하다. 다른 사람들이 홍대나 연남에 갈 때 좀 더 아는 사람은 상수나 연희에 간다. 다른 사람들이 한강 나들이할 거라고 여의도에 갈 때, 아는 사람은 망원에 간다. 마포는 그런 곳이다. 아는 사람은 많지만, 가는 사람은 비교적 적다. 마포를 잘 아는 사람들은 마포만 간다. 마포에서만 논다.
서교동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했던 곳이자 나의 풋내 나던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동네다.
보통 '홍대 가자'고들 말하지 '서교동 가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꼭 '서교동'이라는 지명을 사용한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어느 겨울, 첫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됐었나. 젊은 피를 믿고 옷을 얇게 입고 다닌 탓에 몸살감기에 크게 걸렸었다. 열은 39도까지 올랐고, 온몸에 오한이 들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았다. 그렇게 간 병원에서 내가 처음 받은 질문은 "서교동에서 오셨어요? 동교동에서 오셨어요?"였다. 상수에 살았던 나는 서교동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아서 서교동에서 왔다고 답했다. 그 별거 아닌 질문이 내게는 꽤 인상 깊었나 보다.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그날 방으로 돌아와 그 문장을 가지고 글을 썼으니 말이다. 서교동이나 동교동, 그러니까 홍대는 그렇다.
언제 가도 평소와 똑같다. 제일 변화가 많을 것처럼 보이는 곳이지만, 제일 변화가 적은 곳. 9번 출구에서 나와 KFC 앞을 보면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건물을 끼고 좌회전하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또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버스킹을 하고, 가파른 언덕 따라 오르면 보이는 홍대가. 홍대는 이제 어린애들의 놀이터라며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홍대는 홍대다. 서면이나 동성로, 둔산동, 인계동, 구월동, 뭐 여러 지역에서 유명한 번화가가 하나씩은 있지만, 홍대만 한 곳은 못 봤다.
합정 합정의 매력을 처음 갔을 때 느끼기는 어렵다. 합정은 가면 갈수록 느껴지는 매력이 더해지는 그런 동네다. 내가 처음 합정에 갔을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왕복 8차선 도로에 교보문고와 메세나폴리스, 홈플러스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보고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모이나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합정에 다시 방문했을 때 깨지고 말았다. 이제는 이름도 아예 기억나지 않는 어느 카페에 머물다 나와서 걷는 저녁의 합정 거리는 아직도 아른거린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화되고 보정되지만, 그것을 감안하고도 그날 합정은 정말 좋았다. 벌써 합정에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도 반년이 넘었다.
가장 최근에 방문했던 합정은 예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눈에 담은 합정 거리는 아직 선명하지만, 글로 풀어낼 정도로 생생히 남아 있지는 않은가 보다. 내가 방문했던 식당은 아무리 검색해 봐도 나오지 않는다. 망했나 보다. 사실 합정에 작정하고 가 본 적이 없다. 그냥 어쩌다 가게 되고, 상수에서 할 게 없어서 합정으로 넘어가고, 내가 좋아하는 2호선과 6호선을 다 끼고 있으니 만만해서 들르게 되고. 나는 아직 합정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은 것 같다. 잘 알고 가면 매력이 떨어지거나 흥미가 보다 떨어지는 동네가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합정을 '잘 모르는 동네'로 남겨두고 싶다.
연희 연남동에 질린 사람들은 연희동에 간다. 홍대가 한물갔다는 소식에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은 연남동에 모이기 시작했고, 그 탓에 연남동도 예전처럼 '아는 사람들만 아는 공간'에서 벗어난 지는 오래다. 연남동에서 걸어서 20분.
날씨 좋은 날에 산책 좀 하다 보면 연희동에 도착한다. 서울에 사람 없는 공간이 어디 있겠냐마는 사람이 비교적 다른 동네에 비해 적어서 한적하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고급스러움과 고즈넉함이 물씬 느껴져서 거주하고 싶을 정도다. 연희동과 비슷한 느낌의 동네를 굳이 꼽아 보자면 한남동과 성수동 정도가 있겠지만, 언급한 두 동네에 비해서는 상권 발달이 덜 되어 있어서 '핫플'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카페들도 조용조용하고 식당들도 조용조용하다. 그래서 좋다. 담백한 동네. 연희.
망원 마포구에서 망원은 빼놓을 수 없는 동네다. 내가 참 좋아하는 동네이기도 하다. 서교동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망원 한강공원 앞에 내려 주는데, 여의도 한강공원과는 상반되는 잔잔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동네가 한적하지만 있을 건 다 있고, 휴일에도 사람이 미어터지는 경우가 잘 없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동네가 아닐까. 일전에도 글에서 한번 언급한 것 같은 내용인데, 망원은 정말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다. 망원시장이 있기 때문일까. 아무튼 망원은 가장 사람 사는 곳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곳이다. 언젠가 다시 마포에서 살게 된다면 망원에서 살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