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이나 마셔요 기분도 꿀꿀한데 먹고 싶은 음식 있어요?
닭발 먹어요?
괜찮으면 가요.
깔끔하게 꾸미고 차려입은 남녀 둘이서 강남구청에 소주를 마시러 갔다. 둘 다 차림새만 보면 신사나 압구정 로데오에 있을 법한데. 다들 알겠지만 주말 저녁 로데오는 지옥이다. 그래서 그녀가 잘 안다는 강남구청으로 갔다. 강남구청에 내가 올 일이 있나. 뭐, 처음 본 사람과 처음 가는 장소. 나는 모르는 공간을 잘 알고 있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 나쁘지 않았다.
사실 처음 만난 남녀가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편한 장소에서 마시는 소주가 제일이긴 하다. 결혼식으로 인해 여러모로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우리'를 위해 매운 닭발을 먹으러 갔다. 자리에 앉아 컵에 물을 따르고, 앞치마를 매고, 냅킨을 깔고, 젓가락을 놓다 보니 상황이 참 웃겨서 웃음을 터뜨렸다. 한 명은 신부 화장보다 더 신경 쓴 듯한 화장에 손바닥만 한 귀걸이를 걸고 있고, 한 명은 포마드 한 통은 쓴 것 같은 머리에 정장을 입고 있고. 그런데 그 둘이 모인 장소는 닭발집이라니. 우리가 결혼식장에서부터 닭발집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정신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고, 또 너무나 순탄하였기에 그제야 숨을 돌리며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근데 저한테 시간은 왜 내 주신 거예요?
처음 본 사이잖아요.
처음 본 사이니까 그렇죠. 결혼식장 오는데 누가 신랑보다 꾸미고 와요.
웃겨서 정말. 처음에는 그쪽이 신랑인 줄 알았잖아요. 그녀 또한 나와 비슷한 이유로 내게 흥미를 느꼈는데 마침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 것이라고 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궁금한 것도 많았다.
그런 생각에서 비롯되어 느껴지는 감정도 참 많았지만 최대한 절제했다. 그리고 정제된 내 생각을 내뱉었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난 일이라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 사는 게 참 웃겨요. 오늘도 언젠가는 추억이 되려나. 우리가 인연이 될 수도 있고 악연이 될 수도 있고.
웃겨요.'라고 말했나.
닭발은 매웠다. 정말 매웠다. 그녀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나보다 더 매워했다. 맵다고 헥헥거리며 쿨피스를 마시고, 땀을 흘리고, 소주를 마시고, 미간을 찌푸리고, 화장이 지워질까 봐 휴지로 땀을 '톡톡' 닦고, 입술은 팅팅 붓고. 그 모습이 귀여웠다. 이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대체 이 사람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먹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으니 왜 안 먹고 자기 먹는 모습을 구경만 하냐고 타박을 하는데, 그 모습조차 참 귀여웠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도 못하면서 왜 불닭발을 먹으러 왔냐는 내 질문에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사실 뼈 있는 닭발은 처음 먹어 봐요. 항상 무뼈만 먹었거든요. 이거 봐 봐요.
징그럽잖아. 근데 또 뻔한 거 먹기는 싫었어요. 뻔한 곳 가기도 싫었고.
갑자기 울면 이상하잖아요. 그냥 맵다는 핑계로 눈물 콧물 다 빼고 싶었어요.
근데 또 막상 먹으니까 눈물이 안 나네요. 하하.
잘 생각해야 할 때였다. 우리가 만난 곳은 각자의 전애인 결혼식. 그러니까 나는 전여친 결혼식에 가서 전여친의 결혼 상대의 전여친을 만난 거고, 그녀는 전남친 결혼식에 가서 전남친의 결혼 상대의 전남친을 만난 것이다. 그렇게 만난 우리가 닭발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는 것이고. 김칫국 마시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우리가 만난다면. 겹치는 지인은 없겠지만 만약 우리가 결혼한다면?
아니다. 결혼할 일은 없겠지만, 아니,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
우리가 결혼한다면 너는 결혼한 전남친이라는 사람에게 청첩장을 보낼까?
그러면 너의 전남친과 나의 전여친은 손잡고 와서 우리를 축하해 줄까?
그보다. 오늘 결혼한 내 전여친과 네 전남친은, 서로 각자 전애인에게 청첩장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뭐 '젊은 날의 아련한 옛사랑'이란 혼자만의 비밀을 가지고 서로 배덕감이라도 느끼려는 건가. 도대체 나는 오늘 결혼식에 왜 간 거지. 나이 먹고 생각이 많아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많아졌네. 그냥 술이나 마시자. 오늘의 추억과 오늘의 인연은 오늘로 끝내고-.
그날 우리는 닭발집에서 나와 2차까지 갔다. 강남에 잘 오지 않는 나와 달리, 그녀는 강남에 자주 오는지 또 잘 아는 맥줏집이 있다며 나를 데려갔다. 시끄러웠다. 어느 테이블에서는 다른 테이블에 합석 제안을 하고 있고, 어느 테이블에서는 인사불성이 된 친구를 모시느라 고역을 치르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밖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들의 연기가 그대로 들어오는 탓에 '시가렛 훈제 노가리'를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쿨피스를 많이 마셔서 배가 불렀고 가게는 정신없었다. 맥주를 마시는 둥 마는 둥 하며 그녀 이야기를 듣고, 또 내 이야기를 했다. 이상하다. 처음만큼 예뻐 보이지 않네.
그때 든 생각. 우리는 인연이 아니라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구나. 이 사람과의 인연은 오늘로 끝내는 것이 좋겠다. 가끔은 이어지지 않아서 아름다운 인연도 있다. 살아가며 문득 떠오르는 순간에, 오늘의 추억을 꺼내먹어야지.
아,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진심) 연락처라도 교환해요. (예의) 조만간 또 술이나 한잔해요. (거짓) 연락할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거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