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트임 메이크업이 한창 유행이다. 붓과 펜을 연장 삼아 화가가 되어 본다.
눈의 앞뒤, 밑으로 선을 그리고 있자 하니 갑작스레 울화가 확 치밀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강남에 갔다.
원하는 모양이나 개선하시고 싶으신 부분 있으세요?
눈이 너무 작아서 좀 커 보이고 싶어요.
어때요?
이러면 훨씬 크고 시원해 보이죠?
의사가 나무 꼬챙이로 내 눈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눈이 시원해 보인다는건 대체 무슨 뜻일까?
그럼 반대로 더워 보이는 눈도 있다는 말인가?
사실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양손에 꼬챙이를 들고 내 대답만을 기다리는 전문가가 왜인지 애처롭게 느껴져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2. 보다시피 난 머리는 가볍고 귀는 얇은 여자라,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수술대 위였다.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뤄졌기에 새삼 내가 더는 미성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보호자 동의란은 패스, 수술비는 내가 성인이 되고 모은 알바비로.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두려워졌다.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그것'은 사람보다는 기계에 가까워 보였다. 의사는 급한 대로 기계에 기름칠이라도 하려는 듯, 뻐근한 마취 주사의 통증에도 비명 하나 내지 않는 나를 칭찬했다. 하지만 그러한 친절이 무색하게도 정말이지 마지막 상담을 할 때, 수술복으로 환복할 때, 얼굴에 디자인을 위한 선이 그어질 때, 꼭 감은 두 눈 위로 커다란 빛의 잔상이 느껴질 때는, 아,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는 것 아닌가?
속으로 수백 번은 더 외쳤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게 이런 것일까?
3. 양쪽 눈을 1mm씩 앞트임했다. 고작 2mm 갖고 참 유난이다 싶겠지만,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 모든 표면이 변했을 거라는 말이 있듯, 얼굴에서 2mm는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충분했다. 하지만 나의 변화를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거라는 나의 믿음은 안일한 생각이었다. 새로운 눈은 조금 아리송해서 사람과 취향 따라 호불호가 꽤 갈렸다. 분명 같은 사람이 같은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호평을 듣고 온 날에는 새 눈이 예뻐 보이고, 혹평을 듣고 온 날에는 눈이 예뻐 보이지 않는 아리송한 경험을 했다. 여자의 마음은 왜 이리도 갈대인 걸까?
매번 줏대 없이 흔들리고 마는 심지 약한 자신이 괜스레 미워졌다. 트밍아웃 후에는, 호오와 관계없이 공통된 질문이 잇따랐다.
근데 왜 했어?
나는 그 질문이 정말이지 가혹했다.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걸 왜 물어?
눈이 마음에 안 들었으니까.
4. 완벽한 인간은 없다. 이 명제가 참이라면 콤플렉스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일 텐데, 왜 우리는 콤플렉스의 '콤'자만 들었다 하면 자존감이 바닥까지 추락하여 볼품없고 한심한 인간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일까?
본인의 결핍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어른'은 본인 콤플렉스를 드러내면서도 유머로 승화시키는 고급 스킬을 구사하기도 하지만, 그런 면에서 나는 어른이 덜 된 것 같다. 나의 콤플렉스는 참 탱탱볼 같은 형태인 건지 몸 안에서 이리저리 튀어 다니다가 정신을 잠깐 놓고 있을 때면, 나도 모르는 사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서 모든 대화를 어지럽힌다. 결과적으로 엉망이 된 분위기를 책임지는 것은 모두 나와 대화하는 상대방의 몫이다.
눈 모양도 이상하고, 크기도 마음에 안 들고, 그냥 직접 눈을 째 버릴까?
아, 그냥 다시 태어나기라도 할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누가 나의 눈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 결국 어찌저찌 입에 발린 칭찬을 받아냈을 때는 정말이지 미안해서 미쳐버리겠다. 그래서 나의 트라우마 트리거가 자극될 때면, 입술을 꽉 틀어막고 미소를 지어 보인다.
'어리니까 괜찮아'라는 말은 무적의 방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결핍을 보이는 것이 곧 치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보다 큰 세상과 부딪혀 보자며 호기롭게 택한 상경 아니던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가끔 우물 안이 그립다. 내가 소유한 그 어떤 것도 이 세상 앞에 당당히 내보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안다. 때로는 감추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내가 하나의 커다란 콤플렉스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 같다.
두꺼운 화장으로 숨기고 싶은 것을 가려봤자 피부만 답답해 보인다.
거울 속의 '진짜' 나는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얼른 어른이 되자.
성숙해지자. 모난 자신이 한심스러울 때마다 몇 번이고 다짐하고 되뇌었다. 내가 꿈꾸는 어른은 보다는 에 가까워서, 지금 끙끙 앓고 있는 문제쯤은 단숨에 해결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6.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이 글의 전문은 '서울 5평짜리 자취방에서의 벌어진 여러 해프닝'이었다. 그러니까 강원도 시골 마을에 계신 내 부모님께서는 딸의 앞트임 소식을 전해 들을 리가 전무했다는 뜻이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엄마 아빠한테는 대체 어떻게,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까. 금쪽이는 매일 밤 마음을 졸였다. 걱정하던 일은 늘 걱정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각오를 겨우 다지고 본가에 내려갔건만, 엄마 아빠는 내 앞트임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름 양심의 가책을 느껴 고해성사하려고 했으나, 가정의 평화는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나. 대의를 위해 함구하기로 했다. '어른들 눈에는 별 차이가 없구나' 하며 긴장의 끈을 놓고 있던 순간, 엄마 아빠보다는 조금 더 세심한 할머니께 들켜버리고 말았다.
7. 눈이 좀 변한 거 같다는 할머니의 말에, 지레 놀라 '화장이 진해져서 그렇다'고 눈을 커다랗게 뜨며 둘러댔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거짓말의 수준이참 허접해서 다소 민망스러웠지만, 할머니는 내가 성형 수술을 했다는 생각은 전혀 못 하셨는지, 나의 억지스러운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으시는 듯했다.
예쁘다며, 이제 아가씨가 다 되었으니 적당히 꾸미는 것도 알아야 하는 법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미어졌다.
애써 외면하려던 현실이 밖으로 들쳐진 순간이었다. 어른이 되면 보다 능숙해지고 보다 지혜로워질지는 몰라도, 무결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다. 세상 곳곳 널브러진 불쾌한 감정들에 조금 무뎌질지는 몰라도, 무적이 되는 건 아니다. 어쩌면 어른의 표상을 지키기 위해, 지금보다도 더 숨겨야 할 모습이 많아질지도 모른다. 평생을 꾸며내야 할 운명이라면, 한 번쯤은 솔직해져 볼까?
8. 내 안에서 가끔씩 튀어나와 나를 매우 성가시게 만드는 '그놈'은 다소 찌질한 면이 있어서 사람들의 호감을 사지 못하고 숨어지낸다. '그놈'은내가 가장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가장 아끼고 가장 나다운 것이지만, 다른 데에 내놓으면 절대 사랑받지 못할 녀석이라, 익명으로나마 보이고 사랑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본심이다. 거짓 없는 본심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