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회기, 청춘 회귀(미류) 회기역 2번 출구로 나와 쭉 걸어가 코너를 꺾고 들어가면 보이던 너의 보금자리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과오를 쓰고 후회했는가. 또, 나는 무엇을 그렇게 처절하게 지켜내려고 했던가. 우리 사랑도 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던 너의 그 냉담한 말에 나는 또 무엇이 그리도 서러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눈물을 흘렸던가. 아직까지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나는 아직 모른다.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쥐려고 할 때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사라지고, 다시 쥐어 보려 손을 뻗으면 어디론가 떠나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이 나의 숙명이라 자위하며 나는 나를 죽이고 있었다. 와중에도 언제나 네가 우선이었다. 나는 사랑을 믿었다. 우리 사랑의 끝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던 네 생각이 착각 이었으면 했다.


아직도 나는 그 보금자리에서 너와 함께 먹던 저녁밥이 생각난다. 그 집의 주인은 너였지만, 지키는 쪽은 항상 나였다. 너는 볼일이 있다며 나갔다. 너는 해야 할 것이 있다며 나갔다 돌아올 때면 둘이서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큼의 부대찌개를 포장해 왔다. 부대찌개가 그렇듯, 특별한 거 없고 별다른 것 없는 그런 부대찌개 말이다. 뭐, 싸구려 햄과 소세지가 몇 개 들어가 있고, 포장지 없는 라면 사리가 한개 반 정도, 대파에 민찌까지 들어가 있는 그런. 조미료 맛이 물씬 느껴지던 그 부대찌개를 식탁 한가운데 놓고 너와 소주를 마시다 보면, 그러면 다 원래대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나는 더 이상 긴장할 필요가 없었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네가 돌아왔으니까. 혼자 집을 지키지 않아도 됐으니까. 너는 그러면 안 됐다. 내가 너의 보금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너는 회기에서. 너는 회기에서. 그날 이후 나는 너의 집에 가지 않았다. 우리 사랑의 끝이 어찌 될는지 너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너는 확답 비슷하게 넌지시 그 말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이 겠지. 우리 사랑의 끝도 어찌 될지 모른다는 그 말을.


나는 그날 이후 한동안 회기라는 단어만 봐도 속이 메스껍고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듯 지나고 보면 미화되어 있고 아련해지기 마련이다. 그 뒤로 일 년 만에 회기를 다시 찾았을 때였다. 신이문에 갔다가 회기 사는 친구가 파전 골목에서 술이나 한잔하자길래, 마지못해 갔는데, 회기가 다 거기서 거기라 특별한 곳이 없어서 언제 가도 익숙한 공간이지마는, 너와 함께한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지난날의 아련함에 젖어 들기도 했다.

한때는 사랑했다는 그 정 때문에, 나는 가끔 말이다. 네가 무엇을 하며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다시는 가지 않겠다던 나의 다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나와 함께한 인연들은 회기에 뭐가 있는지, 나는 회기에 다시 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회기와 나는 숙명이 아닐까. 내 청춘이 서려 있는 그곳. 아직도 회기만 가면 그해 겨울 내 뺨을 찌를 듯 불던 칼바람과 너의 보금자리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들이 선하게 그려져 마음이 아려 온다마는, 그것마저 내가 안고 가야할 숙제가 아닐까. 성북구글싸개 / 달에 한두 번 회기에 방문


회기 오디세이 회기는 나의 학창 시절과 스무 살의 설렘이 가득 한 곳이다. 휘경동에서 나고 자랐던 어린 나에게 회기는 가장 닿아 있는 듯하면서도 언제나 환상이 끊이질 않는 곳이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학교에서 몰래 시켜 먹던 중국집에서 어제는 술을 마시고, 첫사랑과 걸었던 골목길에서 술에 잔뜩 취해 오늘은 처음 만난 여자와 찐한 키스를 나눴다. 대입 수능 문제집을 풀었던 카페에서 전공책을 보다 보면 옛날 기억들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오래된 영화의 화질처럼 선명하지 못하고 먹먹한 그런 장면들을 추억하다 보면 마치 어릴 적 나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늘 보던 장소들이 조금씩 바뀜을 느낀다. 물론 그 길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이 가장 많이 바뀌었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회기'가 주는 아담한 느낌과 무언가 꽉 찬 사람 냄새는 나를 늘 두근거리게 한다. 적당한 맛집들과 점점 많아지는 예쁜 카페들, 트렌드에 맞게 바뀌는 술집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뿌듯함을 느낀다. 활기찬 대학생들과 힘들어 보이지만 특유의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고등학생들, 바쁜 하루를 마치고 술잔을 기울이는 어른들이 있는 한 회기는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껏 꾸미고 나타나는 강남과 달리, 자유로움이 잔뜩 묻어나오는 홍대와도 달리, 회기만이 주는 그 매력에한 번 빠진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회기역에 나와 늘 열댓 명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작은 술집들이 몇 개 보인다. 침샘을 자극하는 닭꼬치의 냄새를 뿌리치고 코너를 돌면 조금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언제나 차들이 많은 그 도로를 지나 걸어가면 옛 감성과 요즘의 트렌드가 오묘하게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회기의 진짜 멋은 골목 사이사이에 있다. 인스타그램에 몇 번이나 소개된 이자카야부터 작은 가게 앞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고깃집, 비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파전골목, 가슴이 먹먹해지는 지난 연인과 갔었던 술집까지. 일일이 설명하면 끝도 없지만 다 개성과 자부심이 강한 곳들이다. 너무 많은 것들을 듣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느라 지친 나에게 오래된 친구와 함께 가는 아담한 술집은 강한 위로를 건넨다.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취기가 잔뜩 오른 채로 조금은 쌀쌀해진 밤에 경희대를 천천히 걷고 나면 다음 날 눈을 뜰 힘을 얻는다. 이런 사소한 행복들이 차곡차곡 모아 지울 수 없는 행복의 문신을 내 몸에 새긴다. 우리는 다 행복해지자고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의 다른 공간과는 다르지만, 회기만큼 따스한 위로의 손길을 건네는 곳은 없다. 사람들이 좋아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는 애증의 동네. 이곳은 내 고향 회기다.

사라지는북극곰 / 회기 거주


나에게 회기란 변화무쌍한 공간이다. 한 모습으로 머무르지 않는 그런 곳. 하긴, 그렇지 않은 대학가가 어디 있겠냐마는, 내가 생각하기에 회기는 다른 대학가와는 다르다. 묘하게 향수를 일으키는 그런 곳이다. 갈 때마다 다르지만, 또 그 안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더라. 이를테면 회기역에서 각자의 집으로 가는 사람들, 언제나 시끌시끌 사람 많은 파전 골목, 사람 꽉 찬 273번 버스, 아는 사람을 꼭 한 명은 만날 것 같은 술집 골목. 회기에 있으면 변하지 않은 것들에게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든다. 만적 /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모두 회기인 탓에 자주 감


골동(품)네

회기는 대학가다. 그 대학가란 곳의 구성원이 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대학가라는 단어는 '젊음'이나 '활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곳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품고 있다. 이곳의 풍경은 청춘들로 가득하지만, 그 속엔 시간이 겹겹이 퇴적되어 있다. 젊은이들의 발걸음 사이에는 노인들의 느린 걸음도 있다. 외국어 섞인 대화가 골목을 스치고, 유독 많은 유학생의 시선은 이곳의 낯섦에 잠긴다. 마치 작은 세계가 숨 쉬는 듯하다. 경희대의 커다란 아치를 넘어서면 펼쳐지는 회기 고유의 풍경. 그곳을 들여다보면 질서라곤 없는 듯, 정돈되지 않은 골목들이 이어지고, 평범하고도 소박한 집들이 나란히 숨을 고른다. 저 뒤편의 술집 골목은 우두커니 서서 밤을 기다린다. 사람들이 다시 찾기를 바라며. 회기는 클래식하다. 회기는 대학가지만, 그 어느 곳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난다. 흙냄새가 피어오르고, 그 속에 스민 사람들의 흔적은 마치 오래된 가락처럼 흩어진다. 봄에는 경희의 벚꽃이 길을 따라 흐르고, 그 벚꽃이 지는 자리엔 장마철의 파전 냄새가 피어올라 골목을 가득 채운다. 가을이 오면 은행잎 무심히 떨어져 길 위에 노란 카펫을 만들고, 겨울바람 부는 날이면 나무들이 저마다 고독한 시를 읊는 듯, 스산한 바람 속에 흔들린다. 그렇게 이별과 만남을 준비한다. 이것이 회기의 '사계'다. 반복되는 선율은 나를 따라오듯, 차분히 나와 발걸음을 맞춘다. 새로움에 탐닉하는 사람들, 반듯한 질서를 사랑하는 이들은 아마 회기를 지나칠지 모른다.


회기란 홍대나 신촌처럼 화려한 곳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회기가 마음에 든다. 마치 시간이 서서히 녹슬어 반짝이는 골동품처럼, 이곳은 말없이 존재한다. 나는이 골목들과 함께 천천히, 시간이 빚어낸 침묵의 노래에 따라 늙어가고 싶다. 회기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사라지지 않고,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앞으로 2년 뒤면 나도 이곳을 떠나게 되겠지. 모든 장면들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는 날이 오겠지. 손끝에 닿을 듯 아득한 그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기억할 수 있을까. 천천히 흐르는 시간의 부식 속에서도 잔잔히 빛나던, 기억의 먼지를 품은 골동품 같은 동네를.

이선 / 경희대 재학생이라 회기에 서식


너와 나의 중간이 회기라 회기라는 동네를 처음 알게 된 건 친구 덕분이었다. 같은 동네 사는 친구가 회기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었는데, 그 친구의 덕에 회기가 매력적인 동네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집에서 회기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꼬박 두 시간을 가야 했기에, 가 보고 싶은 마음만 가진 채, 가 보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여행지에서 알게 된 남자와 연애를 하게 되었는데, 그 친구 집과 내 집의 중간 지점이 회기라, 사실 중간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회기에 가려면 내가 더 멀었지만, 언젠가 꼭 가 보고 싶었던 곳이라 회기에서 보기로 했던 기억이 있다.


회기는 말이다. 엄청 유명한 핫플은 아니지만, 골목 사이사이 어딘가 모를 회기만의 감성이 묻은 가게들이 많다. 압구정이나 이태원처럼 멋드러진 힙함도 아니지만, 성수나 연남동처럼 이쁘게 꾸며진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회기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아니,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회기에서 자주 만났고 회기에서 헤어졌다.

마지막 이별까지 말이다. 우리의 관계를 끝내기 위해 만났던 카페는 연인들끼리 가곤 하는 예쁜 카페가 아니라 어딜 가나 다 있는 프렌차이즈 카페였다. 그게 간접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 같아 참 슬펐다. 그 후로 친구들과 회기를 몇 번 갔었는데, 그곳은 그대로더라. 달라진 건 회기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인 것이지 뭐. 처음 느꼈던그 설렘을 가지고 다시 회기에 가고 싶다.

아임파인 / 자주 가지는 않지만 추억이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