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내 마음이 그래> 다 부질없다. 끝나면 그냥 다 쓰레기통으로. 차곡차곡 쌓아온 것은 중요치 않다. 결국엔 구겨진 채로 버려질 테니까. 그저 그렇게. 똑같이. 전처럼. 아무 일 없었던듯이. 평범하게. 물 흐르듯. 그땐 그랬었지, 하는 회상 따위는 사치. 마음이 그래.

언제는 죽고 못 살듯이 굴면서. 유난이란 유난은 다 떨고. 세상이 자기 것 같겠지. 근데 마음이 그래.

언제든 뒤돌아설 수 있고. 돌아서는 순간 남이고. 지구 반대편에 있고. 나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그래도 계속 걷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마주하지 않을까?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 연속되면 우린 운명이지 않을까?

그게 필연이지 않을까?

우리가 만나야 하는 핑계들을 열심히 나열해 본다. 뒤돌아선 게 아니라 등을 맞대고 기대고 있었던 거 아닐까. 하는 의심. 내 마음엔 여전히 네가 있는데 네 마음엔 뭐가 있니. 내 감정은 온전히 너로 설명되는데, 너는 어때. 나는 지워지고 분노, 증오만 남았을까. 아니면 아직도 내가 있을까?

물음표를 그릴 용기가 없는데. 자격이 없다는 거 아는데. 응 나도 알지. 내가 가장 잘 알지. 미안. 종종 보고 싶어. 내 마음이 그래.


<스물다섯, 아직 사랑해 본 적이 없어요> 첫사랑이라... 사랑을 아직 해 보지 못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나는 대한민국 25살의 여성. 첫사랑, 첫경험, 첫 키스, 모든 것이.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를 좋아해 본 적 있어?"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아! 나는 누군가 좋아해 본 적이 없구나!

아! 누군가가 나를 좋아했던 적이 없었구나!

호감이 가는 친구가 있었지만 그것으로 끝.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그건 그 친구를 사람으로 좋아했었나 보다. 그렇다고 나는 무성애자가 아니다. 비혼주의자도 아니고. 동성애자는 더더욱 아니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말한다.

"네가 매일 집에 있으니까 애인을 못 사귀는 거야"


우리 엄마는 아프다.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엄마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아파서 밖에 편히 나가지 못한다. 항상, 매일 옆에서 누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내가 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살아왔고 살아가야 하므로, 나는 화가 많다. 쉽게 짜증을 낸다. 그냥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짜증이 난다. 심지어 친구와 대화할 때도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내가 누구와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사랑을 한다면 상대방은 상처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만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나도 나 자신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꿈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도 점점 나 자신이 혐오로 바뀌고, 나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군가 나를 좋아할 리 있을까?


주말이면 나만의 자유시간이 생긴다. 주말이면 서울에 혼자 종종 간다. 이제 혼자만의 시간이 익숙하다. 내가 상대의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상대는 나의 짜증에 대해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서울에서 혼자 돌아다니면 모두가 커플이고 나만 혼자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짝을 찾는 거지?

항상 생각한다. 나도 상황이 나아진다면 평범한 사람처럼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친구들은 애인이 있어도 없어도 다른 누군가와 하룻밤을 보낸다던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오직 본능에 충실히 하고자 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럼 나는 언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내가 누구와 마음 편히 만날 수 있을까?

나도 나의 첫사랑이 궁금하다.


<비로소 이별한다는 것> 나는 아직도 너를 좋아하나 봐 다 잊었다고 이젠 안 좋아한다고 생각해도 너를 보면 내 마음은 항상 무너져 내리고, 이제는 다 아물어서 흉터가 됐다고 생각한 내 마음의 상처는 다시금 벌어져 좋은 날을 보내다가도 네 생각이 들면 기분이 울적해지고, 그렇지 않아도 꿀꿀한 날에 네 생각까지 나는 날에는 내가 너무 싫어져. 내가 어떻게 했으면 나를 떠나지 않았을까?

내가 보다 성숙했다면, 내가 더 눈치가 빨랐다면, 조금 더 너를 이해해 줬다면, 너는 나를 떠나지 않았을까?

너는 가끔 내 생각을 할지 궁금해 너에겐 난 어떤 존재였는지도 궁금해 넌나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였고, 정말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어. 하지만 너에겐 그렇지 않았나 봐. 네가 나에게 이별을 말한 날 난 아직도 그때가 생생히 기억나 정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은 느낌이었어. 손이 떨리고 눈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라 살면서 처음 겪어본 느낌이었어. 저번에 네가 나 보고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봤을 때, 그냥 잘 지냈다고 얘기했잖아. 사실 잘 못 지냈어. 너무 힘들었어. 네가 너무 미웠어. 근데 너를 다시 본 순간 다시 믿고 싶어졌고, 다시 좋아하게 됐어. 아니 사실 계속 좋아했던 거 같아. 그래서 예전처럼 돌아갈 수도 없고, 우리의 끝이 또 헤어짐일걸 알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너를 놓치기 싫었어. 반년 동안 보고 싶었고, 안고 싶었고 다시 얘기하고 싶었던 네가 내 눈앞에 다시 왔는데 차마 너를 외면할 수 없었어. 하지만 다시 만나도 상처는 치유되지 않겠지. 결국 우리의 끝은 또 이별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널 보낼 수 있을 거 같아서 다행이야. 잘 가 내 첫사랑 Y


<사람의 마음이란> 누가 먼저 좋아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더라. 나 이제 너에게 갈 준비가 됐다고 두 손 잡고 말했던 그날, 조심스러웠던 우리. 날 사랑한다고 했던 너의 입과 맑은 눈동자. 내 머리칼을 한참이나 쓸어 넘겨주었던 너의 따뜻한 손은, 눈이 정말 많이 내렸던 그 겨울밤에 눈과 함께 녹아버렸던 거야. 뜨거웠던 나는 몇 시간 동안이고 식지 않고 너를 기다렸는데 너는 아니었나 봐. 나를 계속 사랑할 것이라 믿었던 것은 오만이자 실낱같은 희망이었어. 우리 사랑의 시작은 너였지만 끝은 나였지. 내 첫사랑은 늘 너야. 사랑을 알게 해 줘서 고마웠어.


〈여름만 되면 돌아오는 사람아〉 한 계절이 돌아올 때만 되면 나는 향수 나의 가장 소중한 기억이 남아있는 그 계절의 온기가 다시 돌아왔다먼 여행을 떠나간다고 들뜨던 그 아이의 목소리 운동장에 그어진 달리기 줄푸릇하게 피어나는 새싹들까지도 하나같이 다 너를 닮아서 나의 가장 소중한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아무에게나 물은 적도 있었다 가장 소중한 기억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어찌 가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그 사람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다는 말 대신 나에게 하얗게 핀 민들레를 주었다


그리곤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말을 해 주었다

처음에는 우스웠다 돌아가고 싶어 한 질문에 돌아온 답변이 나에겐 더 허무맹랑했기에 우습기만 했던 그 답변이 잊혀갈 때쯤 난 그 다른 새싹을 마주했다

새로웠고 아름다웠고 이 더운 여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따스한 아이였다 그 아름다움은 너무나 예뻐서 나에게 그때와 같은 여름을 줄 것만 같다 촘촘하게 울타리 지은 나의 정원에 피어날 것만 같아서 두렵다


여름의 더위가 두려운 대신 그 더위의 기억이 아름답게 남을까 또 두렵다 한여름에 피게 될 그 꽃이 아름다운 기억이 될까, 날아가 버릴까 올여름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쨍한 햇빛에 생기는 나의 짙은 그림자는 유난히 밝은 너의 따스한 미소를 따라가고이 뜨거운 공기와는 꽤나 닮아있었다

너의 따스함과 함께 가을을 보내고 싶다


<여름밤의 인연> 나는 네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어.

왜?

그냥 왠지 내가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사람 같아서 시선을 떨어뜨리게 돼. 너를 처음 만난 곳은 무더운 도시의 열기가 바닥부터 올라와 양 뺨을 달구던 한여름 저녁의 왕십리역 광장이었다. 택시에서 내렸다는 연락이 왔지만, 너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고 있으니 너에게서 전화가 왔다. 택시에서 내리기는 했는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일단 거기 있어. 내가 찾아갈게. 시끌시끌한 사람들을 헤치자 횡단보도 맞은편의 한 사람이 보였다. 여름의 열기를 견디고자 밝은 코발트색 크롭티와 흰색 츄리닝을 입은 나와는 달리 너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을 뒤집어쓴 남자였다. 올바른 맞춤법과 띄어쓰기로 구성된 문장을 사용하고, 사람과 함께하기보다는 매일 혼자 영화를 본다던 너. 군중 속에서 한 치의 유별남도 자처하지 않은 저 사람이 바로 너구나. 내 인생에 맞는 답지를 발견한 것처럼 성큼성큼 다가갔다. 너는 어딘가 고장 난 듯 멋쩍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렇게 왕십리 광장을 뒤로하고 걷는 순간 비로소 나의 여름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연기만 자욱한 흡연 부스에서, 로스팅 소리만 울리던 조용한 카페에서, 비 오던 새벽의 석촌호수에서, 불 꺼진 한강에서.

가장 예전에 봤던 영화부터, 새벽에 혼자 듣는 음악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까지 나누며 속까지 다 털어내 보였다. 너는 날 좋아한다고 했고, 나는 좋아한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너는 손을 잡았고, 나는 잡힌 채로 두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내 얼굴을 만져 간직하고 싶다는 말에 그러라고 했다. 너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내 얼굴 곳곳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적막 속에서는 늦여름 냄새가 났다. 내 숨까지 모두 훑어낸 후에야 너는 눈을 떴다.


나는 네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어. 살면서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봤다. 내가 누군가에게 감히 그 정도의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부모의 존재를 지우고 열아홉부터 꾸역꾸역 살아내며 돈을 벌다 새벽이 되어서야 좁은 월세방에 몸을 뉘던 초라한 내가 감히. 너는 네가 한 말이 열아홉 이후로 멈춰있던 나의 시간을 1초 더 흘러가게 했음을 알까.


우리는 여름의 열기라곤 한 톨도 남아 있지 않던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초입 사이에 헤어졌다. 남들 헤어지는 것처럼 평범하지만 그렇다고 보잘것없지는 않은 이유로. 계절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 겨울을 더욱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영화를 사랑하던 너와 영화를 공부했던 나. 우리의 이야기를 꼭 단편영화로 만들자고 함께 말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혼자 해야 할 일로 남았다. 다시 여름이다. 그리고 다시 여름이 끝나간다. 이제는 내 시간을 내가 흘러가게 해야 할 때다. 네가 선물해 준 1초를 마중물 삼아서. 일단 거기 있어. 이번에도 내가 찾아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