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 감정은 언제나 어색하다.
가슴 한군데가 시큰거리고 저린다. 서러움이 확 올라와서 눈물이 고인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 주먹도 쥘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 힘이 빠진다. 이미 끝난 대화창에 들어가 지난 대화를 곱씹고, '잘 지내'라는 말을 끝으로 끝난 대화를 이유도 없이 수십 번씩 들락날락한다. 삭제할 것들이 산더미로 쌓여 있는 갤러리를 몇 번이나 쓸어내린다. 평소에는 귀찮아서 보지도 않았던 사진들인데 말이다. 사진은 더럽게 많이 찍었네. 잠을 자고 일어나면 네게 연락이 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좋을 것 같았다. 사실 다 꿈이 아닐까?
전부 꿈일 거야. 회피하고 싶어서 잠을 자고 일어났다. 어떠한 연락도 와있지 않았다. 정말 끝이구나. 연애가 끝났다. 이번에는 무언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연애를 통해 배운 것을 통해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다. 이번 사랑이 끝나게 된 원인은 뭘까. 너의 권태?
나의 권태?
맞지 않던 생활 패턴?
성격 차이?
언젠가부터 뚝뚝 끊기던 대화?
아니면, 이제는 사랑보다 현실이 중요해져서?
우리는 많이 싸웠다. 싸우긴 참 많이 싸웠다.
그럼에도 맞춰가며 살았는데, 이제는 맞출 힘조차 사라진 걸까.
이별이 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사랑은 아름다웠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이별은 아팠다. 아름다웠던 이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를 조금 더 사랑하고 누구를 조금 덜 사랑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별할 때의 슬픔은 사랑의 정도와 별개의 문제였다는 말이다. 정이라는 게 무섭다. 정이 들고 사랑했던 사람과 영영 보지 못할 것이라는 그 생각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거절 잘 못하는 성격에 불편해도 조금 참고 하자는 좋지 못한 습관은 나의 연애에서도 드러났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별 사유'로 충분히 채택 가능한 문제들도 내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고, 연애를 시작하고, 정이 들어버리면 '잘 가꾸어진 내 사랑'이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그래서 참았다. 대학에 처음 들어가 만난 K. 그는 연락이 늦었다. 가끔은 하루가 넘도록 연락이 안 될 때도 있었다. 연애라는 이유로 상대방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어왔던 나는 힘들어도 참았다. K가 사랑하는 방식은 이런 것이겠지, 내가 이 사람을 바꾸려고 하면 안 되겠지, 하는 마음에 그가 잠수를 타다 5일 만에 연락했을 때도 나는 참았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갔던 술집에서 알게 된 H. 자기는 다른 남자들이랑 다르다던 H는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는 사람처럼 떠들어댔다. 평생 나만 바라볼 것처럼 행동하던 H는 내가 없는 내 자취방에 다른 여자를 들였다. 다른 여자가 누워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역겨움이 올라와 침대를 버리고 바닥에서 자곤 했다. 집주인에게는 벌레가 매트리스 안에 알을 깐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고, 새 침대를 사놓겠다고 했다. 태어나 입에 담배를 물어 본 적이 없다던 S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아, 또 무엇 때문에 나는 힘들었지. 하지만 전부. 전부- 전부.
참고 또 참았다. 사랑하니까.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찌질하지 않았던 이별은 없었다. 사랑을 재단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잘못과 반성을 용서하고, 묻고 가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하지만 정말 웃긴 건끝내 이별'당하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는 쪽도 나였다. 물론 이별한다는 상황 자체가 슬프기도 했지만, 상황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처량해서 드는 자기연민에 드는 서러움이 더 컸다. 이별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렇게 이별하고도 쉽게 상대방을 놓지 못하는 내 모습이 참 비참했다. 거기서 느껴지는 허무함과 서러움이란 감히 '가슴이 찢어진다'는 표현으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괜히 그들을 위해 참고 버텼던 나 자신이 한심하다. 내가 바란 것은 그저 진실된 사랑이었는데 말이다. 늘 후회는 늦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화 좀 내 볼걸. 애인이 나 몰래 다른 여자와 술을 마시고 들어왔을 때 소리라도 질러 볼걸. 나를 두고 바람피운 애인 머리채라도 잡을걸. 할걸, 그럴걸, 걸.
그래서 이번 이별의 사유는 무엇일까. 나는 또 상대방에게 일종의 심사를 당한 셈이다. 나는 여전히 당신의 품에 머무르고 싶은데. 당신이 느꼈던 권태는 내게 곧 안정과도 같았는데. 우리의 확실치 못한 미래쯤이야 서로 의지하며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너와 나 사이에 벌어지는 다툼을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 이별이 힘들어서 그렇게 믿고 꾸역꾸역 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별은 언제나 일방적이다. 최후 변호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변호할 기회가 생긴다고 한들, 상대방에게 채택될 일은 극히 드물다. 슬퍼할 이유가 없다. 나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되고,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자유와 해방을 얻은 꼴이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렇게나 서러울까.
언제쯤 이별에 능숙해질까. 그러게 말이다 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