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카리나랑 윈터 중에서 한 명 골라봐 지젤.
헐 남자 중에 지젤이 제일 좋다는 사람 처음 봤어.
뭘 모르는 사람들이네.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오빠랑 만날 때 입을 옷 고르려구.
그럼 성수역 3번 출구에서 만나자!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가 있는 게시글은 총 여섯 개. 그마저도 세 개의 게시글에는 내가 키우는 고양이가, 두 개의 게시글에는 내가 나온 사진이, 나머지 게시글 하나에는 풍경 사진이 있다.
무엇을 하면서 사는지 굳이 알리지 않고 살던 나의 습관이 여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런 나와 반대로 당신의 피드는 '매우' 화려했다. 팔로워가 겨우 세 자릿수를 넘는 나와 달리, 당신은 몇만 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었다. 스크롤을 내려도 끝이 나지 않는 방대한 양의 피드. 화려한 게시물. 유명한 카페, 식당, 장소, 값비싼 물건들.
물질적인 것보다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건 당신의 한 줄 소개였다.
'모델, 방송인'. 나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호기심이 들었다.
당신을 조금 더 알아가 보고 싶었다.
성수에 정말 오랜만에 갔다. 한참 지난 일이지만, 전애인과 헤어지고는 성수에 가지 못했다. 그녀와 마주치면 어떡할까 싶어서. 사실 길거리에서 전애인과 마주칠 확률이 몇이냐 되겠냐마는, 함께한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과거가 오버랩되면서 힘들어질 것 같아서. 그래서 성수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당신은 약속 장소를 성수로 잡았다. 그래. 이제 극복해야지.
언제까지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 수는 없으니까. 나는 용기를 내어 성수로 갔다. 어쩌면 내 안의 무언가를 부술 기회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품은 채 말이다. 당신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각은 3시. 나는 40분 정도 먼저 도착해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참 동안이나 구경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네가 성수를 좋아했으니까. 그래서 성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너와 닮아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러다 곧 그만뒀다. 다른 사람을 기다리며 네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스워 보여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당신은 알까. 너는 알까. 그날 성수에서 나를 스쳐 지나간 사람들은 알까.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 나만 아는 비밀이라는 건 참 재밌다. 그러던 와중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에게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러게 말이다. 사랑이 삶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부분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사랑하니까 사랑한다고 말하고, 사랑인 것 같아서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나는 최대한 많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것이다. 이유가 뭘까. 일그러진 내 첫사랑으로부터 파생된 결핍일까. 지울 수 없는 상처 속에서 고장이 나 버린, 내 안에 아직 자라지 못한 소년이 자꾸만 사랑을 갈구하는 걸까. 내가 외모와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이유도 모두 사랑 때문이다. 그것이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기에 가장 유리한 형태니까. 그렇게 외적인 미를 추구해야 내가 사랑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말이다. 나를 스쳐 지나간 모든 여자들이 평생 나를 잊지 못했으면 한다. 망각은 곧 죽음과 현상적으로 동일하니까. 나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게 싫다. 누군가 나를 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끔찍하다.
아, 오늘 뭔가 예감이 좋지 않은데. 혼자 궁상을 떨고 있는 나를 누군가 불렀다. 당신이었다. 너무 덥다며 땀을 뻘뻘 흘리던 당신은 시원한 카페부터 가자며 나를 카페로 데려갔다. 들어가는 곳마다 만석이라 몇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구석진 자리가 하나 비어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저마다 떠드는 소리에 이야기 나누기가 어려웠다. 소음 때문에 몇 번이나 당신의 입 모양을 보고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유추했으니 말이다.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뭐라도 말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말과 말 사이를 헤집고 들어오는 정적이 정말 싫다. 그래서 뭐라도 말해야 직성이 풀린다. 나 네가 방송하는 거 봤어. 웃긴 채팅도 많더라. 너 별로야. 내 마음속의 별로, 뭐 이런 거.
아 그런 이야기 하지 말자. 부끄러우니까. 방송하다 보면 이상한 사람들 많이 엮인다니까. 그러는 와중에도 아까의 광고 문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신에게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불쾌했다. 나에게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당신에게 진정 사랑받고 싶은 것일까. 그렇다면 사랑받기 위해서 왜 이러고 있을까. 아니, 이런 건 사랑이 아니야. 그렇다면 사랑은 뭘까. 진짜 사랑은 뭘까. 나는 미움받고 싶지 않은 것일까.
왜 그리도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사랑받고 싶을까. 뭐가 정답일까. 그래서 사랑에 정답은 있냐?
카페를 나와서 길거리를 좀 돌아다녔다. 앉아서 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적이 생길 것 같았다. 잡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 성수가 어려운 나와는 달리 당신은 익숙한 듯 나를 데리고 돌아다녔다. 알아봐 둔 팝업이 있다며, 자주 가는 소품샵이 있다며 앞장서서 나를 안내했다. 당신은 양손 가득 무언가를 샀지만, 내 손은 가벼웠다. 당신이 무엇을 샀는지 잘 기억나진 않는다. 나는 네잎클로버를 하나 샀다. 미신 따위를 믿지는 않지만, 눈에 딱 들어오는 클로버 하나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질 때쯤 우리는 술을 마셨다. 술이 좀 들어가고, 취한 당신이 입을 열었다.
나는 왜 오빠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알아?
사실 우리 처음 만났던 날 많이 취해서 잘 기억나진 않아.
그래도 이거 두 개는 확실하게 기억나. 첫 번째는 오빠 얼굴.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다음 날 아침에 오빠가 내가 자는 동안 내 집을 치워 준 거. 그러고서는 먼저 간다고 잘 자라고 말해 주고 갔던 거. 그게 좋았어.
나는 생각했다. 그런 건 당연한 행동 아닌가. 방금 당신의 혼돈을 본 것 같다. 알고 싶지 않았던 당신의 이야기를 알게 된 것 같다. 싫다. 술에 취해 자연스럽게 함께 들어간 모텔에서도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싫다. 이게 과연 사랑이야?
오늘은 도구가 되고 싶지 않다.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으로 남기가 싫다. 전부 싫다.
오늘 우리 섹스는 하지 말자.
당신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혼돈이 멈추지 않는다. 싫다.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라고 누군가 설득해 주길 바라기 때문에 타자의 맹목적인 사랑을 찾는 것 같다고. 나의 모든 모습을 알고도 사랑해 주는 신이란 존재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너는 내 버릇이 됐다. 또 너도 내 버릇이 됐다. 싫다. 이미 스쳐 지나간 두 명의 여자를 떠올린다. 죽었지만 죽지 않는 나의 신들을 떠올린다. 나의 신은 나를 구원해 주지 못했다. 싫다. 이 글에는 온통 내가 싫어하는 것들뿐이다. 죽어버린 신들을 저주한다. 그렇게 가장 아프고 지독하고 저주스러운 말을 찾는다. 머릿속에서 저주할 말을 한참 동안이나 훑다가 한 단어에서 생각이 멈춘다. 사랑해. 내가 이렇게까지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사랑은 어떠한 형태로 다가오는 것인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보고 사랑을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싫다. 사랑이 싫다. 아니, 어떠한 형태의 사랑이 싫다. 무섭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사랑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