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라고 하는 시기는 대충 몇 살쯤일까.
누구는 불혹 앞에 서서도 청춘을 외치는 한편, 인생은 예순부터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의 눈에는 20대 후반이나 30대 후반이나 다 똑같은 청춘처럼 보일지 몰라도, 청춘에 해당되는 나이대는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이라고 한다. 청춘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이들은 대개 청춘이다. 청춘 중에서도 초입에 들어선 경우가 많다. 청춘이라는 말이 주는 싱그러움이나 풋풋함, 그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청춘이라는 분위기에 취해 청춘을 사랑하고 청춘을 즐긴다. 아마 대부분이 그랬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며 그 푸릇푸릇함을 잃는다.
무엇을 하든 웃음만 나오고 행복했던 20대 초반 시절을 지나면, 남자의 경우 군대에 다녀오고 어느 정도 철이 들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뭐, 좋게 말하자면 '철이 든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찌들어졌다'는 것이겠지. 어릴 적 버스나 지하철에서 볼 수 있던, 초점 없고 의욕 없는 눈빛으로 멍하니 서 있던 그 직장인 아저씨들을 닮아가게 된다. 다들 그렇게 산다. 전공 공부가 잘 안 맞는 것 같으니 전공 살려서 취업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하며 합리화하고,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 하며 졸업장을 겨우 받아내고, 거기서 조금 더 노력한 사람들은 나름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 일찍이 자리를 잡고, 방황하는 청춘들은 뒤늦게 자리를 잡아 그래도 나름 먹고살 수는 있을 정도로 벌어서 먹고산다. 매일매일 똑같은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흘러 20대의 막바지에 서게 된다. 아홉수에 뭐라도 있다는 말이 사실인지, 다들 스물아홉만 되면 이상하게 그해를 넘기기 어려워하는 듯해 보였다. 괜히 기분이 뒤숭숭해지고, 뭘 하든 재미가 없고, 마음이 붕 뜨나 보다.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 겨우 먹고살 정도는 되었다마는 내 부모님이 내 나이일 적을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아직인 것처럼 느껴진다. 지난 20대를 돌아보면 허탈함이 들기도,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떠올리면 암담하고 조급해지기까지 하다.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지만, 시간은 이런 나의 마음을 모르는지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빠르다.
최창순 <바닐라 스카이>
삶은 끊임없는 불안이라고 하던가. 우리는 걱정하는 것에 대한 만족스러운 결과를 직접 보기 전까지 절대 불안을 다스릴 수가 없다. 마음을 여유롭게 먹으려고 해도 우리의 사랑이나 나의 미래. 앞으로의 인생, 깜깜한 목표, 그리고 어릴 적 꿈꾸던 색바랜 야망은, 그것들은. 그것들에 대한 불안과 후회는 나를 괴롭힌다. 저 초점 없고 의욕 없는 눈빛을 가진 찌든 직장인들도, 전부 어릴 때는 큰 꿈이 있었을 것이고, 나름의 목표가 있었을 터인데, 아아, 그들은,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 꿈을 펼치지 못하고 현실에 순응하게 된 것일까. 최창순 <우리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겠지>
아,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며 달릴 필요가 없다. 인생은 마라톤인데, 너무 달리기만 한다면 중간중간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고 지나칠 수가 있으니 말이다. 가슴이 막힐 때마다 나는 바다를 찾는다. 우리는 사실 사소한 것들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에 대한 역치가 너무 높아져서 만족하는 법을 잊은 것이 아닐까?
노래 <나뚜루>에서 최창순은 말한다. 행복은 대단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처럼 늘 주변에 있다고. '그렇게 닿으면 닿는 대로 그냥 편히 아무 생각하지 말고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야지' 최창순 <나뚜루>의 가사 말처럼 우리는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절대적 빈곤은 없지만 상대적 빈곤이 늘어난 탓에, 우리는 먹고살 만하고 행복함에도 남들과 비교하며 자꾸만 더 큰 욕심을 부리고, 더 큰 것을 갈망한다. 우리는 조금 더 내려놓고 살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것들을 누리기도 모자란데, 아등바등 살아 뭐 하나!
가끔은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