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름도 이제 다 갔다. 여름뿐만 아니라 2024년인 올해도 4분기에 접어들며 이제 슬슬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 이 계정을 운영한 지도 1년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한 우물을 1년 동안 팠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한다. 뭐, 끝을 보려면 당연히 한 우물만 파야 하고, 그에 비하면 1년이라는 기간은 무척이나 짧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내가 놀랍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해 한 해 연차가 쌓인다는 것이구나. 나는 아직 이 일에 싫증을 느낀 적도, 권태를 느낀 적도 없다. 아직까지 너무나 재밌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고, 내가 쓰는 속도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속도를 못 따라간다. 이제는 습관이 되고야 만 것이다.
2. 최근 인스타그램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위반 건으로 인하여 골머리를 앓았다. 내가 정말로 위법한 게시글을 업로드한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억울해하지 않으며 결과에 순응할 터이지만, 이 모든 일이 인스타그램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무능력하고 덜떨어진 AI의 판단 착오로 인하여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화가 나고 답답하다. AI의 판단 착오라고 한다면 그 문제를 빠르게 인간이 검토하여 시정해 주는 것이 내 상식선에서 당연한 절차이지만, 인스타그램은 아직까지 나의 재고 요청에 묵묵부답이다. 이러한 일을 겪으며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여태 인스타그램에 과의존한 채 운영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현재 블라블라에서 꾸미고 있는 일이 있다. 언젠가 이런 말을 여러분께 한 적이 있는데 기억하고 계신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블라블라에서는 다른 곳에서 하지 않는 것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블라블라만의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어디에서도 하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다. 우리는 특별한 것을 선보이고 싶다. 남들과 같은 길을 가면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아무튼, 이러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계정 성장 추이를 보면 계속하여 우상향 중이다. 이런 페널티를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 블라블라가 얼마나 더 컸을지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3. 요즘 들어 펜 잡는 시간이 늘었다. 하루에 최소 두 시간 정도는 오롯이 글쓰기 하는 데에만 쓰고 있다. 그만큼 할 말도 많고 쓸거리도 많다. 과장 좀 보태서 내가 평생 쓴 글보다 지난 1년 동안 쓴 글이 더 많다. 나는 종이에다가 글을 쓴다. 휴대폰으로 타자를 치는 것보다는 컴퓨터로 직접 타이핑하는 것이, 컴퓨터로 타이핑하는 것보다는 종이에 꾹꾹 눌러쓰는 것이더 완벽한 글을 쓰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하루에 두 시간 동안 쓰면 한 달에 육십 시간, 일 년이면 칠백 하고도 스무 시간. 남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대체 불가능한 인간이 되고 싶다.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남들이 귀찮아서 안 하는 것까지 해야 한다. 소상공인이 대기업에 도전할 생각조차 못 하듯, 나 또한 내 바닥에서 그러한 존재가 되고 싶다.
4. 돈을 많이 벌고 명예를 쌓고 최고 수준의 내가 되면, 내가 꿈에 그리던 모습의 내가 된다면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나를 옥죄는 잡념과 트라우마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만족할 수 있을까?
5. 완벽한 어른은 없다. 우리는 완벽한 성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어른이 되기를 원한다. 모두들 나이 먹는 것은 싫어하지만 모두 어른을 동경한다. 어른이 된다면 성숙해지고, 매 순간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어른이 된다면 무뎌지고 강인해져서 감정 따위는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문제는 겪을 때마다 처음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서 나를 괴롭히고, 가끔은 어린 시절 그리던 '어른이 된 나'를떠올리고 비교하며 괴리감과 자괴감을 느낀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완전 독립적이며 완전무결하고 완전한 인간이 절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만 한다. 위인전이나 신화에 나오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 그들 또한 비슷한 이유로 아팠을 것이니.
6. 잔나비 콘서트에 갔다. 21년도 어느 무대인사에서 짧게 한 번, 22년도 외대 축제에서 한 번, 그리고 24년도 콘서트에서 한 번, 좋아하는 가수를 이번으로 세 번째 직면하게 되었다. 잔나비 노래를 들은 지 벌써 6년이 지나 햇수로는 7년이 다 되어 간다.
언제 들어도 좋은 그들의 노래지만, 잔나비는 늘 비슷한 시기에 내 앞에 찾아오는 것 같다. 지금 회고해 보는 22년도 당시 나는 정말 작고 약했다. 문학과 노래에 과의존했다. 도피가 잦았고 합리화가 심했다. 그것이 내 한계인 줄 알았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본인 모습에 불만족했다. 나아지고 싶었고, 강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문학과 노래를 끊었다. 시 따위를 읽기보다 계발서를 읽기 시작했고, 감상에 젖어 드는 노래보다 덤덤하고 담백한 노래만 찾아 듣기 시작했다.
23년도가 지나고 24년도가 되었다. 아, 정말 나는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비하여 많이 나아지고 단단해진 것은 맞으나, 나는 아직도 아직이었다. 잔나비를 다시 마주하게 되는 그날에는 더 여물어 있겠지. 꼭 그런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는 데에 집중해야겠다.
7. 그럼에도 달려야 한다. 지치거나 우울한 일이 있어도 딱 3일만 슬퍼하다 일어나야 한다. 지속되면 잠식되기 마련이다. 나는 다시 내 방식대로 달릴 것이다. 아직 해야 할 것이 많다. 이루고 싶은 것이 많다. 달리자!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도 우선은 끝까지 가 보자. 다음 여정에 대한 고민과, 지나치게 빨리 올라온 것인가 하는 배부른 후회는 정상에서 해도 늦지 않다. 다들 우리네 인생 파이팅이다!
이번 살이 마지막일 듯싶은 『사람의 아들』 개정 신판 추고를 시작하며 지나간 지 벌써 오십 년이 다 돼가는 어느 해 늦봄의 막막하고 쓸쓸하기 그지없던 한 젊은이를 떠올린다. 그때도 조금은 일러 보이는 스물다섯 나이에 덜컥 결혼부터 하고 제 허물로 또래보다는 오 년이나 늦어진 입대를 그만큼 오랫동안 간절하게 바랐던 것처럼이나 조급해하며 소집영장을 기다리고 있던 젊은이가 있었다. 드디어 영장이 나오고 입영을 하루 앞둔 날 오후 그 젊은이는 마지막으로 고향 별정우체국에서 서울의 어떤 문예지 편집부로 한 뭉치의 원고를 부쳤다. 「인자」라는 옛날식의 한자 제목을 단 200자 원고지 400매
형에게 임신의 기미가 있는 어린 아내까지 떠맡기고 입대하는 내게 어찌 쓰라림이나 애틋함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속절없이 쌓여가는 실패의 기록에 대학 중퇴와 병역기피가 겹친 사회적 불구가 강요하는 불편과 억압, 그리고 점차 짙게 덮씌워져 오는 무위도식과 부랑의 혐의에서 일시에 벗어나는 후련함 또한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뒤 순탄치 못한 신병 시절로 입대 다섯 달 만에야 첫 휴가를 나오게 된 나는 복무지인 서울 근교 예비사단 정문을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거기서 가장 가까운 시내 대형 서점을 찾아갔다. 마침 나온 그 문예지 10월 호에서 그해 여름 중편 공모 당선작 발표와 심사 후기를 찾아 읽어보기 위함이었다. 책을 산 나는 먼저 당선자와 당선작 명단에서 내 이름과 작품 제목을 찾아보았으나, 어찌 된 셈인지 예심 통과자 명단에도, 심지어는 응모작품 접수 명단에조차 「인자」라는 작품 제목이나 그때는 주민등록 원본대로 쓴 내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았다. 일등병 때 태어난 첫아이가 두 돌을 지나서야 삼십육 개월 만기 제대를 한 나는 그 뒤 대여섯 해, 한때는 무슨 참사처럼 여겼던 그 낙선을 슬퍼하거나 분해하며 곱씹어볼 겨를도 없이 보냈다. 대책 없이 또래와 학교를 떠나 홀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를 세상을 헤매느라 늦어진 사회복귀에 골몰해서였다. 그러다가 아내와 두 아이, 그리고 내가 형님 댁을 나설 때 함께 따라나선 어머니까지 합쳐 다섯 식구를 이끌고 대구로 나와 학원가를 전전하던 끝에 지방 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