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구걸> 너는 잠꼬대로 떠나지 말라는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잠꼬대로 버리지 말라는 말을 하곤 했다 했다고 했다가 아니라 하곤 했다인 이유는 나의 잠꼬대는 의도적이었고 너의 잠꼬대는 어려웠다 서로가 원하는 대답을 듣고 나면 너와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잠에 들곤 했다 사실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품에 안겨 자는 네가 깰까 봐 연분홍빛 벽지만 바라봤다 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마음이 약해질까 봐 우리의 잠자리는 항상 아픔만이 가득했다.
너와 나의 사랑은 치열한 수싸움에 불과했다 나는 퍼즐을 찾아 맞출 때마다 심장이 타들어 가는 듯한 작열감을 느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가끔씩은 달래지지 않는 감정들도 있어서 그럴 때면 시를 썼다
시가 완성될 때마다 나를 잃었다.
서로의 상처가 너무나 깊어서 헤아릴 수가 없는데 우리는 상처의 책임을 서로에게 물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너의 잠꼬대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네가 깨지 않도록 몰래 눈물 흘리며 조용히 코를 먹어댔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한다며 서로를 달랬고, 그것이 진실된 마음인 줄 알았다. 나는 너의 처음이 되지 못한다. 너는 나의 처음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포옹과 입맞춤, 당신이 내게 바라는 다정한 몸짓들에서, 우리의 장소에서, 또, 우리의 사랑에서, 아니, 우리의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들에서 너는 다른 것을 떠올릴 것이다. 이것 참 동상이몽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싶어 생각에 잠겼다 어느 몹쓸 생각이 들 때쯤 너는 나를 놓아주었다. 그것마저 복제에 불과한 행위였지만 말이다.
너는 다시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잠꼬대할 것이다. 나는 다시 연필을 목젖까지 쑤셔가며 시를 토해 낼 것이다. 시가 완성될 때마다 나는 나를 잃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시를 쓰는 습관이다. 내가 시를 쓰는 방식이다. 이것이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내가 배운 사랑법이다. 몹시 나쁜 버릇 말이다. 나는 아직도 나의 세계에 갇혀 글을 쓰고 시를 쓴다. 그 어떤 것으로도 함락되지 않는 부국하고 건재한 세계에 갇혀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나의 세계가 무너지기를 바라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내 세계의 왕이 아닌 포로이니까. 나는 성북구에서 오늘도 글을 싼다.
<동거> 날이 덥습니다 너는 오늘도 작업실로 출근했습니다 나는 너와 함께 아침을 먹은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어요 식탁은 아직 치우지 않았습니다 너의 흔적을 물끄러미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반찬을 먹다가 흘렸는지 밥은 얼마나 남겼는지 급하게 먹었는지 천천히 먹었는지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이런 흔적들에 꽤 도움을 받습니다 말끔한 식탁에 앉아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간혹 네가 아침을 많이 남기면 그대로 두었다가 점심으로 먹기도 합니다 너는 다섯 시 무렵이면 퇴근하고 나는 그 언저리에 맞춰 저녁을 준비합니다 동거를 시작했을 무렵에는 매일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탓에 요리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집 앞 마트에서 특가할인 스티커가 붙은 식재료를 사서 카레나 볶음밥을 만들어 먹습니다 그마저도 귀찮으면 라면이나 통조림을 먹습니다 설거지는 단출합니다
설거지는 네가 하고 나는 곧바로 우리가 함께 들어갈 욕조에 물을 받습니다
살이 델 정도로 뜨거운 물이 어느 정도 차오르면 너를 부릅니다 몸을 천천히 욕조에 집어넣습니다 프라이팬에 버터가 녹듯 뭉근하고 아늑해요 꽤 오래 앉아 온도의 변화를 느껴봅니다 처음과 달리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데워지고 식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잠시 허물을 벗는 양서류가 된 기분입니다 허물은 녹아 목욕물에 희석되겠죠 너의 허물도 함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하수구로 흘려보냅니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뒤로는 너의 머리카락과 나의 머리카락을 구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닮은 점이 하나 더 생겼네요 짧은 머리는 예상보다도 훨씬 편합니다
수건으로 몇 번 털어주기만 하면 머리카락은 금방 마르거든요 비눗물을 한껏 머금은 너의 품에 안기면 여전히 목욕물에 잠겨있는 기분이 듭니다 너의 품은 밀도가 높아서 안겨있으면 답답합니다
너는 순수한 사람입니다 나는 내가 천박한 사람인 걸 잘 아는 사람이고요 우리의 동거는 언젠간 끝이 날 겁니다 그게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니면 이미 진작에 끝나버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곳에 적응하면 떠나겠다는 약속을 더이상 늑장 부리며 미뤄둘 순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