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 이별한 후 며칠 동안은 내 삶을 돌이켜보고, 앞으로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시험 성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스무 살이 되고 학과 공부는 뒷전으로 둔 채 매일같이 한량처럼 술이나 퍼마시고, 또 연애라는 것을 하다 보니 나의 학점은 좋을 리가 만무했다. 오죽하면 같은 과에서 그나마 좀 가깝게 지내던 한 여자아이가 어느 날 어떻게 내 학점을 보고는 '네 학점이랑 내 가슴 사이즈랑 바꾸면 서로 좋을 텐데 말이야'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건 큰 문제였다. 나는 이미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번 다루어 보기로 하고, 아무튼 대학 입학 전부터 '4년 치 등록금은 전부 내 줄 테니 졸업하면 그뒤로는 끝을 내자'는 말을 듣고 시작한 대학 생활이었으니 마음 한켠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었다. 원래라면 국가장학금이라던가 성적장학금 따위를 받아서 부모로부터 학비를 지원받는 것에 대한 심적인 부담을 줄이려고 했지만, 나의 학점은 성적장학금은커녕 국가장학금 충족 기준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다.
결국 돈이 문제였다. 대입 수능이 끝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사회 경험을 쌓는다는 핑계로 공사장 현장 일이라던가 택배 상하차를 통해 몸을 혹사하며 벌어 둔 돈이 좀 있었기에 한 학기 동안은 그런대로 궁핍한 생활을 연명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돈마저도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물과 서울이라는 가슴 간질거리는 타이틀에 심취하여 돈과 시간, 그리고 마음을 너무 낭비했다는 말이다. 서울에는 연고 하나 없어서 이따위 감상이라던가 고민에 젖을 때면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스물이 되고 시작한 공부와 연애 둘 중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것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고민 따위는 들지도 않았을 터. 하지만 둘 다 보기 좋게 쫄딱 망해 버리고 말았으니 허탈함과 막막함은 배가 되었다.
언제까지고 궁핍한 생활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등록금은 둘째 치고 우선은 당장 굶어 죽지 않으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찬밥 더운밥 신세 가리지 않고 일하다 보면 얼추 한 학기 생활비 정도는 벌어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만만하고 급여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무엇이 있나 찾다가 선택한 곳은 고깃집이었다. 나는 공덕역 근처에 위치한 숯불갈비집에 출근하게 되었는데, 가격이 저렴한 탓에 주변 직장인이며 가족 단위의 손님까지 몰려드는 탓에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2주에 한 번꼴로는 이상하리만큼 손님이 없어서 월급을 받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날도 있었다. 그 고깃집에서 내가 맡은 일은 숯불을 관리하고, 테이블에 숯불을 놔주고, 불판을 갈아 주는 것이었다. 여유가 좀 되는 날에는 불판을 깨끗이 닦는 일도 맡았다. 그 일을 시작한 것이 7월이었고 8월이 끝나갈 때까지 계속했으니, 더위가 한창일 때였다. 한여름에 불 앞에서 숯이나 쑤셔대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숯불을 멍하니 오래 쳐다보고 있다 보면 눈이 아리고 잔상이 남아 몇 분 동안은 초점이 잘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무튼, 전쟁통에서도 사랑이 싹튼다고 하던가. 전쟁통 같던 고깃집에서도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여자가 바로 최였다. 나랑 또래거나 기껏해야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이던 최는 고깃집에서 서빙이나 테이블 정리, 계산 따위를 맡았다. 땀과 기름때에 범벅이 된 옷을 입고도 늘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일하던 최는 주방 이모들이나 사장님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종종 손님들에게 팁까지 받곤 했다.
하지만 우리가 가까워질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근무 시간에는 로봇처럼 늘 웃음을 짓고 있었던 최였지만, 마감을 하고 가게를 나서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그녀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일을 막 시작하여 아무것도 모르던 처음에는 최의 쌍둥이 동생이 가게 앞에서 최를 기다리고 있나, 하는 그런 엉뚱한 추측까지 했으니 말이다. 가끔은 사장님께서 고생한 직원을 위해 갈비와 소주 따위를 대접해 주시곤 했는데, 최는 그런 회식 자리에도 참여하지 않고 집으로 가 버렸다. 참,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8월 말이 되고 슬슬 학교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 고깃집 사장님께도 다시 학교에 나가 보아야 한다는,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렸다. 개강하기 전까지 일주일 정도만 일을 더 하면 됐었기에 마음에 여유가 좀 생겼고, 나는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말도 못 걸고 일을 관두면 언젠가 후회할 것 같아서 먼저 최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번 달이 끝나면 일은 관두시는 거예요?
이제 개강이잖아요. 그때 돌아온 답변은 차가웠고, 무서울 정도로 짧았다. 가게 안에서는 웃음을 잃지 않았던 최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뇨. 전 학교 안 다녀요.
그 무뚝뚝한 답변을 들었을 당시에는 최에 대한 호감이 한순간에 사라질 만큼 섭섭했었다. 사흘 정도 홀로 생각을 하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어차피 일을 관두고 떠나는 마당에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는 사람을 그냥 포기해 버리기는 아쉽지 않은가. 다시 거절당한다면 그건 인연이 아닌 거고, 다시 말을 붙였을 때 이야기가 잘 통한다면 그건 잘된 일이니 우선은 마지막 출근 날에 다시 용기 내 말을 붙여 보자. 내가 마지막으로 갈비집에 출근한 그날은 목요일이었지만 마침 또 가게에는 이상하리만큼 사람이 없는 날이었고, 가게에 있는 TV에서는 무한도전 재방송을 하고 있었다. 방송 내용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되게 웃긴 장면이 나와서 함께 웃고, 또 웃다 보니 최는 나에 대한 경계를 좀 푼 것처럼 보였다. 그 덕에 최와 이야기를 오래 나눌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사연 많은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예상처럼 나보다 한 살이 많았던 최는 부모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서 나는 깊은 동질감을 느껴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마터면 최의 말을 끊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뻔했으니 말이다. 최는 서울에서 월 29만 원짜리 고시원에서 머물고 있다고 했다. 최로부터 다시금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무엇 때문에 서울에 왔는지, 서울에서는 고깃집 일 외에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다.
그날은 최도 나와의 대화가 썩 싫지만은 않았는지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며, 대학 생활 잘하고 다음 방학 때 고깃집에서 다시 보자는 말을 했다. 분위기가 대충 아름답게 마무리되려고 할 무렵, 나는 거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고 무리를 했다.
우리 주말에 얼굴이나 봐요. 매번 이렇게 서로 꼬질꼬질한 모습으로만 봤잖아요.
제가 맛있는 거 사 드릴게요. 다행스럽게도 최는 흔쾌히 내 제안을 수락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주말이 되기까지 나는 최를 사석에서 만났을 때의 상황을 수십 번 그리며 약속을 기다렸다. 원래도 이성에 대한 공포나 떨림은 없었지만, 최는 조금 달랐다. 최 앞에만 서면 괜히 말을 더 조심하게 되고, 마치 숙제 안 한 학생이 선생 앞에선 것처럼 가슴 안쪽이 움찔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서 첫 데이트에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었다.
주말이 되고 만난 최는 평소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늘 묶고 다녀서 길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던 최의 머리카락은 얼추 날개뼈까지 올 정도로 길었고, 나들이를 나온다고 한껏 꾸몄는지 화장은 평소보다 훨씬 진하고 또, 화려했다. 최를 만나기 전까지 혼자 마련하고 연습한 대화거리들이 있었지만,그 모습을 마주하고 나니 머릿속에 지우개가 훑고 지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떠들다 보니 시간은 잘 갔고, 헤어지기 전 아쉬운 마음에 노포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실 때는 말까지 놓아버렸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서로에 대한 경계는 풀어진 것이 분명했지만, 사적으로 고작 한 번 만난 것을 가지고 내 바람처럼 가까워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음 약속을 잡고 싶었다. 약속을 잡아야 한다면 둘 다 술을 좀 마신 그때 말을 꺼내는 것이 적절한 것 같아서.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입을 뗐다.
그... 있잖아 혹시. 혹시 말이야...
응?
그게 아니라 괜찮으면 그...
불러다 놓고 우물쭈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가 어지간히 답답하기라도 했는지, 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때 들은 말은 아직까지 생생히 기억난다. 어찌나 가슴 설레고 벅차던지, 나는 하마터면 최를 세게 끌어안고 소리를 지를 뻔했으니 말이다. 그때는 알았을까. 그 사랑이 얼마나 나를 갉아먹을지 말이다. 너, 나 좋아한다고 말하려는 거지?
나도 눈치가 있어서 대충 짐작은 했다만, 오늘 너랑 이렇게 따로 만나 보니 확신이 들어. 진짜인 줄은 몰랐네. 나도 네가 싫지는 않으니 우리 몇 번 만나 보자. 아직 사귀자는 말이 아니야.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니까 말이야. 우선은 이렇게 종종 얼굴이나 보며 알아가 보자. 우리 둘 다 주말에 쉬니까 주말마다 만나는 게 어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