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랑 만나 볼래?

인제 와서 그날의 기억을 곱씹어 보면 정이 내뱉은 그 말은 꽤나 오글거리고 낯간지러운 문장이 아닐 수 없다. 남자들이 어린 여자를 만날 때 '오빠 타령'을 하는 것처럼 정은 늘 '누나'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우리 같이 밥 먹으러 가자'라고 말해도 되는 것을 정은 꼭 '누나가 밥 사 줄 테니까 따라와'라고 말했다. '주말에 할 거 없으면 같이 놀러 갈래?'라고 말해도 되는 것을 '주말에 누나랑 놀러 가자'라는 식으로 말하며 은근히 본인이 누나라는 사실을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정의 '누나 타령'이 싫지만은 않았다. 앞서 슬쩍 언급했던 것처럼 정이 가지고 있는 앳된 얼굴 탓에, 그런 나이 부심이나 생색쯤은 귀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괜히 정을 놀리거나 괴롭히고 싶을 때, 나는 '누나'라는 단어를 강조해 정을 놀리곤 했다. '누나'가 가여운 동생 밥 좀 사 주면 좋겠다, 친구들과 술이라도 마신 날이면 '누나'가 취해서 몸도 못 가누는 동생 집 앞까지 데려다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괜히 어리광을 부릴 때도 있었다.


다시 정이 내게 고백을 한 그때로 돌아가 보자. 차 내부에는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히는 거친 소리와 우리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사실 그 파도 소리가 방파제에 부딪쳐 나는 소리인지 저들끼리 부딪혀 나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어두웠던 나머지 바다는 자동차의 쌍라이트마저 잡아먹었으니 말이다. 정의 숨소리는 떨렸다. 이것 하나는 분명했다. 내게 늘 강한 이미지로 보이고 싶어 하던 정이 이런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머리가 아팠다. 정이 내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마음 없는 사람에게 밥을 사 준다거나, 드라이브를 시켜 주는, 그런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호의를 누릴 때는 좋았다. 물론 나도 정에 대해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스물다섯 여자와 스무 살짜리 남자가 만난다고 한들, 헤쳐가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기도 하고, 접점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 하나밖에 없다는 점뿐이니. 자연스럽게 정에 대한 마음은 망상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정이 내게 고백을 했다. 여기서 나는 무슨 선택을 해야 했나.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말을 해야 하는데 조심스러워야할 것 같아서 입은 열지 않았다. 대신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정이 무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웃음을 지었다.

아,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나는 정을 처음 봤을 때부터 호감을 느꼈다. 정확히 말해서 '첫눈에 반했다'와 같은 과장된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빠져든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마음에 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느낀 호감은 오롯이 외모로부터 온 것이었다. 내가 정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낀 매력은 '내면'의 매력이 아닌 '외면'에서부터 온 정욕에 가까웠다는 말이다. 당시 나는 긴 생머리와 하얀 티셔츠, 딱 달라붙는 청바지에서부터 오는 호감보다 마음이 통하는 데에서 느껴지는 호감이 더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더 알아가 보았다. 알아갈수록 어려웠다. 알아가다 보니, 정신 차려 보니 나는 정의 차 안에서 정의 마음 고백을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수줍은 고백을 받을 때까지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단어 중 적절한 단어가 무엇인지 한참을 골랐다.


그래 만나 보자. 그런데 말이야 우리 내가 정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은 맞으나, 그 호감이 사랑으로 커질 정도로 굉장한 것은 아니었다. 호감이 사랑으로 커지는 것을 막는 데에는 아마 우리의 너무나 불확실한 미래와, 서로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 있었다. 스무 살이면 앞뒤 안 재고 본능 가는 대로 살아도 됐을 법한데, 나는 이것저것 잴 것이 많았다. 그렇다고 정의 사랑 고백을 거절할 수는 없었던 나머지, 나는 정이 던진 '만나 보자'는 제안을 수락하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우리 미래를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너무나 거슬린 나머지, 그녀의 제안을 수락하는 동시에 '그런데'라는 단어를 함께 내뱉어 버렸다. '그런데' 뒤에 붙였던 말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마도 우리의 나이 차이가 야기할 문제와 주변 시선들, 우리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것들, 따위였던 것 같다. 최대한 정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내 딴에는 잘 둘러서 이야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내 의도가 잘 전달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만나기 이전에는 둘이 만나도 뭐 하나 어색한 부분이 없어서 편하고 즐거웠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난 것처럼 언제 만나도 막역하고 반가웠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연인'이라는 일종의 계약 관계를 맺고 난 뒤로부터 나는 오히려 정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더욱 편해져야 할 사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잘만 얻어먹었을 밥이지만, 오히려 얻어먹기 위해 오만 장난을 쳤을 테지만, 연인이 되고 난 뒤로부터는 정이 밥을 사 준다고 할 때마다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이십 대 초반 동갑내기끼리 만난다면 경제적인 수준이나 생활 수준 등이 엇비슷하여 함께하는 데에 부담이 없겠지만, 정과 나는 자그마치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났다. 이러한 나이 차이를 계속해서 언급하는 이유는, 당시 내가 느꼈던 다섯 살 차이는 생각보다 컸고, 다섯 살 차이로부터 오는 삶의 방식 차이는 연인이 되고 더 극명하게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나는 정에게 느낀 '불편함'을 내가 과분한 사람을 만나서 느끼는 '부담감'으로 해석하려고 애썼다.


우리는 길을 걸을 때 손을 잡았고, 데이트가 끝나면 뽀뽀도 했다. 그러다 가끔 꼭 장난으로 누구 하나가 키스를 하고, 그러다 분위기가 조금 고조되면 정의 자취방으로 갔다. 우리는 가끔 영화를 보러 갔다. 신파가 가득하여 내 돈 내고 절대 볼 일 없는 그런 영화도, 정과 함께 보러 갈 때면 내가 샀다. 정과 만나며 내가 지갑 열 일은 자연스레 잦아졌으며, 돈이 바닥날 때쯤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연애와 사랑을 시작하면 돈 쓸 일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나, 고정적인 수입이 없었던 스무 살의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금전적인 불안에서 오는 공포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산책하고 싶다는 핑계로 석촌호수를 갔다. 크기도 작아서 금방 한 바퀴 도는 그 호수를 서너 바퀴쯤 빙글빙글 돌고는 벤치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가만히 앉아 조잘조잘 떠드는 정을 볼 때면, 내가 과연 정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정이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 주는 만큼 나도 정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이 사람은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텐데 내가 붙잡고 있는 게 아닐까, 입대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연락도 할 수 없을 텐데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지, 등과 같은 잡념에 사로잡히곤 했다.


마음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애초부터 정에 대한 마음은 이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랬던 것 같다고 믿으며 나의 어리숙한 과거를 미화하려고 하는 것인지, 정말그 정도의 마음밖에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상황이라는 것에 시간이 너무 지난 나머지 내게 유리한 쪽으로 미화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몇 날 며칠 동안 고민하다 해야 할 말은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못됐다. 내가 정말 못됐다.

이미 저지른 일이라 돌이킬 수는 없지만, 상황이 더 꼬여서 정이 나를 지금보다 더 좋아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 손을 쓸 수 없어지니까. 내가 정에게 잊지 못할 개새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우리 이야기 좀 하자. 할 말이 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