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과 스물하나라는 나이는 멋이 나질 않았다.

무엇을 해도 어설프고 서투른 티가 나길 마련이었고, 심지어는 찌질해 보이기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지금 와 스물하나일 적의 나를 돌이켜보면 나름 스물에 비하여 경험이 좀 생겼다고 으스대곤 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둘 다 풋풋하고 우습기 짝이 없었으리라.

왜, 그렇지 않은가. 대입 수능을 끝마치고 성인이 된 자유를 만끽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에 입학하였던 당시 우리는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 야속한 세월이 흘러 선배 된 입장에서 바라본 스무 살짜리 새내기는 한없이 작고 어려 보였음을 느꼈잖은가. 스물한 살이었던 적의 어린 날의 나는 술기운이 없으면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는 법을 몰랐으며, 기껏 배려라는 것을 한답시고 나의 기분보다 타인의 눈치를 보는 데에 급급했다. 뒤늦게 사춘기가 왔는지 당시 내 주제에 맞지 않게 모든 것이 시시해 보이기까지 했으니.

선민의식이나 우월의식 따위에 젖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유은과의 일로 돌아와 볼까. 그날도 결국 술이 문제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술자리가 재밌어서 나는 취하는 줄도 모르고 술을 마셔댔다. 나도 그날 내가 술을 정확히 얼마나 마셨는지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그날 나를 부축해 주고 자취방까지 잘 데려다 준 고마운 친구의 말에 따르면 나는 혼자 소주 대여섯 병에 맥주 한 병을 마셨다고 한다. 잘 마실 때는 소주 서너 병을 마시던 나의 주량을 넘겨도 훌쩍 넘긴 것이었으니 그날에 대한 기억은 흐릿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이를 먹은 지금은 주사라고 해 봐야 어디 애꿎은 벽에 기대 노래를 조용히 흥얼거리는 것 정도지만, 술을 가르쳐 줄 어른이 없어서 술이라는 것을 친구들과 노상에서 대강 배웠기에 술버릇이 엉망이었던 당시의 나는 술만 마시면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당시 가지고 있었던 고약한 주사로는 고성방가, 노숙, 신세 한탄, 심지어는 무생물과의 대화 시도까지. 그중에서도 타인에게 가장 민폐가 되는 주사는 다름 아닌 '전화 걸기'였다.


본래였으면 술기운을 빌려 진심을 전하는 것이 되겠지만, 그날은 무언가 달랐다. 진심을 꺼내기 위해서는 취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무리해서까지 술을 마셨던 것이었다. 이쯤 되면 눈치챈 사람들도 있겠지만, 맞다. 유은에게 보다 자연스럽고 그럴싸하게 접근하기 위해 술을 마셨던 것이었다. 유은은 매일, 매시간, 매 순간 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고, 나는 그런 유은을 잊기 위해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기도, 숨이 차 넘어가기 전까지 달리기도, 상편과 중편, 하편을 전부 보면 반나절 가까이 지나는 영화에 빠져 보기도 했지만, 와중에도 내 머릿속 한켠에는 유은이 존재감을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유은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이야 뭐인스타그램이나 다른 소개팅 어플을 통한 만남이 대중화되어 있기에, 그런 매체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데이팅 어플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까지 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들 하지만, 당시에는 얼굴 한 번 실제로 본 적 없는 사람에게 호감을 표시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남자답게 용기를 내어 '그쪽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데 연락이나 하고 지냅시다'와 같은 댓글을 달았더라면 뭐가 돼도 됐을 터인데, 현실에서는 그래도 이성과 말 좀 붙이던 놈이 뭐가 그리도 두려웠는지 선뜻 다가가지를 못했다. 그것 또한 스물하나였기에 가능한 풋풋함이어라.


다시 돌아와 당시 친구와의 술자리로. 그래서 그날의 취기는 어쩌면 용기그 이상의 무언가였으리라. 장수가 전장에 나가기 전 술 한잔 들이키고 출사표를 내듯, 나는 취해서 풀린 눈에 억지로 힘을 줘가면서까지 폰을 켜고 유은의 블로그에 들어가 흔적을 남겼다. 댓글을 남길 당시만 해도 나는 완벽한 문장을 구사했노라, 하며 취한 와중에도 정신을 붙잡은 나 자신을 참으로 대견하다 생각했는데, 취기가 가신 뒤에 본 그 댓글은 우습기 짝이 없어서 아직까지도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 1ㄴ녕하-스 스스님(유은의 닉네임)-저기. 저 성북구+글싸개 + 인데요

_그쪽그예뻥스 저랑연그락하고 지낵요


「그래서 말이야, 그날 회기에서 어떤 일이 있었냐면.」을 진작 읽어 보았던 사람들이라면 내가 쓴 문장을 기억할지 모른다. 그날은 내 삶에서 몇 안 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간 날'이었기 때문이라며 과거에 대한 일을 추억하며 우려낸 그 글 말이다. 내가 진탕 취한 후, 유은에게 연락을 남긴 그날도 앞서 언급한 '잘 풀리는 날'에 가깝지 않았을 성싶다.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해석할 엄두도 못 낼 듯한 나의 댓글을 읽은 유은은 전화번호를 흔쾌히 댓글로 남겨 주었다. 이렇게 쉽게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을 무엇이 두려워 그토록 오랫동안 홀로 끙끙 앓았던가, 하는 후회도 몰려옴과 동시에, 이제는 유은의 연락처를 아는 셈이니 한 발 더 가까워졌구나, 하는 기쁨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는 당장 유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겠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걸었던 것이니, 그것 또한 지금 생각해 보면 무례하기 짝이 없었던 젊은 날의 객기가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처음 듣게 된 유은의 목소리는 나의 예상을 한참 빗겨나갔다. 인터넷이라는 공간 속에서만 기껏해야 몇 마디-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연인들이 나누는 대화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분량이기에-를 나누어 본 것이 전부였고, 그렇기 때문에 유은에 대한 실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나의 머릿속에서 그려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유은에 대해 상상하고 지레짐작한 것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목소리'였다. 하지만 앳돼 보이는 얼굴과는 상반되게, 부모 세대가 쓸 법한 말투로 써 놓은 댓글이나 글 몇 개로는 그 목소리를 도무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어떨 때는 여자치고는 낮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겠거니 하다가, 어떤 날에는 여느 여자들과 다를 바 없는 '다소 높은' 목소리 톤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상상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에서 '유은의 목소리'에 대한 호기심은 아예 사라지고야 말았다. 내 상상이 유은의 목소리는 '중저음의 허스키'가 정설인 것이라고 굳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듣게 된 유은의 목소리는 뜻밖이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당돌했고, 그렇다고 해서 여느 여자들과 다를 바 없는 그런 목소리는 아니었다. 듣고 있자면 행복해지는 그런 목소리였다고 자부할 수 있다. 아마 호감이라는 색안경 때문에 그리 느껴지고, 지금까지 그러하였다고 믿고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말이다.


나도 참 바보 같았던 것이, 그토록 어렵게 연락처를 얻어냈다면 피나는 구애와 노력을 해서 유은의 마음까지 얻어내기도 부족할 시간에, 뭐에 씌었는지 날이 밝고 취기가 가시니 알 수 없는 도덕 정신에 사로잡혀서는 엊저녁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해프닝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나섰다. 유은에게 지난밤 있었던 일은 단순 해프닝으로 넘겨 달라고, 민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고, 좋다고 연락처를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또 연락을 하지 말아 달라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나를 보며 유은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사실 그렇다. 단순 '도덕 정신'이나 '최소한의 도리' 따위의 문제로 인하여 그랬던 것이라면 나는 지금 대단하고 바람직한 현인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마냥 그러한 이유 때문에 유은에게 벽을 쌓았던 것은 아니었다. 정을 만나며 공부에 손을 놓았던 탓에 눈 뜨고는 못 볼 성적을 겨우 끌어올려 학과 내 우수 학생 수준으로 만들었고, 교수님의 관심과 총애를 받고 있었던지라, 또다시 이성에게 빠져 허우적대기라도 한다면 나의 인생과 대학 생활이 얼마나 기구해질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가 호감이나 육욕을 앞섰던 것 같다. 또, 만일 연락하며 지낸다고 한들, 대학이 다르고 지역이 달랐던 우리가 만나 봐야 얼마나 만날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과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구전 미신 따위를 떠올리며 애써 상황을 합리화했던 것 같다.


유은과의 실질적인 첫 대화는 그렇게 저무는 듯했다. 첫 대화가 끝나고 내귀에서는 유은의 목소리 환청이 들렸고, 이틀 밤낮 내내 유은 생각만 했던 탓에 꿈이든 현실이든 그녀 얼굴이 아른거렸다. 하루는 잡념을 떨치기 위한 공부라도해 볼까 싶어 전공서를 펼쳤는데, 우연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지. 본문에 나온 문장을 세로로 읽으니 '유은(그녀 실명)'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당신을 잊으려 책을 펼쳤건만, 당신은 이곳까지 나를 좇아 따라오시네, 이따위 우스갯소리나 하며 책을 덮고 행복한 망상에 빠지곤 했다. 이것도 참 웃긴 것이, 실제로 만나 본 적이 없어서 상대방이 말할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상대방이 대화에서 사용하는 반언어적 • 비언어적 표현에는 어떤 습관이 있는지, 그 어떠한 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가상의 유은이 또렷하게 존재했다. 아마 나는 나만의 세상에서 나만의 유은을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유은은 이러한 사람일 거야, 유은은 이러한 사람이 아닐 거야, 유은은 이러한 것을 좋아할 거야, 유은은-, 유은은. 이런 식으로 나는 혼자 유은을 그리고, 유은을 만들었다. 이러한 행위가 훗날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 줄지 당시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그리 시간 낭비를 하며 사는 와중에도 유은은 나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듯해 보였고, 사실 그것이 당연지사지만, 당시에는 유은의 그러한 모습이 얄밉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장 유은을 보러 버스를 타고 떠날 수도 없는 법이고, 전화를 다시 한다거나 만일 어떻게 기회가 닿아 유은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고 한들, 유은과 매끄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내 상상 속에서 유은이라는 존재는 점점 커져만 갔고, 나는 그 상상을 삭힐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시도 써 보고 소설도 써 보았지만, 불씨는 꺼질 생각을 않았다. 그 불씨를 꺼뜨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유은일 것이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 아니라고들 하지만, 사랑 앞에서 사자성어나 미신 따위가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나는 다시 유은에게 연락을 보냈다.

우리 연락 나누며 지내요. 친해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