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이 네 사랑보다 큰 것 같다는 그 연락을 보내고 난 후, 나는 유행가 가사를 흥얼거리는 아이처럼 내가 보낸 문장을 온종일 중얼거렸다.
내 사랑이 네 사랑보다 큰 것 같아…
네 사랑이 내 사랑보다 작은 것 같아… 최가 나의 연락을 본다면 어떤 답을 할까. 나의 연락은 진작 최에게 닿았을 것이다. 하지만 답장을 곧바로 받지는 못했다. 그 답장을 받기까지는 또 한세월이 걸렸고, 나는 그 시간 동안 다시금 망상을 하고, 스스로를 계속하여 채찍질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이러한 분노는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표출되어 지나친 자기혐오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졸지에 그 원망의 화살은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갈빗집에 지원하였던 과거의 나로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출신이나 배경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의 외모만 보고 푹 빠져서는 뭐가 그렇게나 좋다고 헤벌쭉해서 쫓아다녔으니 말이다. 최의 답변은 그 어느 때보다 늦었다. 진작 마음을 다 정리하고 미련을 비워뒀던 터라 별다른 감정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때 내가 최로부터 받은 답장은 지나고 보아도 어이가 없는 부분이 꽤 많아서 적어 본다. 이런 연락을 받을 때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최와 함께할 때 나는 속이 좁아 터진 사람이고 최는 늘 넓은 아량을 베푸는 사람이었다.
내 사랑이 네 사랑보다 작다는 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요즘 일이 바빠서... 내가 너무 소홀했지?
조금만 이해해 주라.
'이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일방적이고 이기적이고 독단적이다. 나의 처지를 헤아려 주고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충성스럽게 행동하면 이해를 잘해 주는 것이고, 조금이라도 나의 개인 의견을 내거나 불평의 목소리를 낸다면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말인가. 이런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랑이라는 것 자체를 시작해서는 안 된다. 내가 최를 열 번만 더 이해하고, 참을 인 세 번만 더 했다면 아마 열반의 경지에 올랐을 것이 틀림없다. 허나, 나의 참을성과 됨됨이가 그 정도로 크지는 못했나 보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언제 출근하고 퇴근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 주지 않고, 최소 12시간에서 최대 이틀까지는 기본적으로 연락이 닿지 않는 애인이 있다면, 세상 어떤 현자가 이해하고 그녀를 사랑해줄 수 있을지.
그래도 사람이라고 이별 후 한동안은 최에 대한 생각이 드문드문 그리고 불현듯 떠올랐다. 하지만 어느 술자리에서 오갔던 대화를 듣고 난 후로 최에게 남아 있던 최소한의 정마저 떨어지고야 말았다. 이야기에 앞서 그날 술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최의 존재를 몰랐을뿐더러, 내가 누구와 연애하다 어떠한 연유로 헤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일절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사전에 일러두고 시작하겠다. 하여튼 그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에 대해 요약하자면, 화곡이나 까치산을 중심으로 해서 술집에 나가기 시작하는 여대생의 수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뭐 학비니, 여행 자금이니 하며 갖가지 이유를 대고 뛰어든다고. 처음에는 대화 따위만 나누다가 후에는 그렇고 그런 일까지 나간다고 하니. 유흥 세계에는 일절 관심 없던 내게 그 말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어느 복학생 선배 하나가 목청을 높이며 그 이야기에 힘을 실어 주었으니 당시에는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나고 보면 과장된 면도 있었고, 거짓이 섞인 내용도 없지 않아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 이야기 덕분에 최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는 일이 수월해졌다.
어쩌면 최를 잊기 위한 수단으로 그 이야기를 소비했던 것이 아닐까.
최가 새로 구했다던 직장이 정말 술집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직종이었는지 그것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는 배우고 싶다던 공부를 배우러 대학에 갔는지, 뭐 그것에 대한 소식도 접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최라는 사람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나 싶었다. 그러다 언젠가 내가 군대를 제대하고 옛 향수에 젖어 공덕 갈빗집을 찾았을 때였다. 사장님께서는 나를 단번에 알아보셨고,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당시 기준으로 사장님께서도 최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한 해 전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때 본 최의 얼굴은 전보다 많이 상해서 최를 오래 봐 왔던 사람들조차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혹시 너 최... 라는 사장님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잰걸음으로 자취를 감춘 탓에 말을 더 붙일 수조차 없었다고. 시간이 지나고 지나 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별 감흥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들었던 이야기지만,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의 마음 한구석은 참 불편했다. 짓지도 않은 죄를 지은 기분이랄까.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잃어버린 듯한 감정이 들었다.
이로써 정과 최, 두 사람과의 사랑 이야기가 끝나고야 말았다. 사실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정과 최 둘이 나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중요한 인물들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스물이 되고 내 인생에 처음 등장한 두 명의 사람이었기에 괜히 스스로 특별함과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스물과 과거를 회고해 보며 나는 인생에 빠질 수 없는 인물들과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롭게 열고 싶은 글이 태산이다.
상준 님, 마지막 원고 보내드려요. 두 번째 장편이 끝났네요. 시원섭섭합니다. 사실 요즘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느냐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우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부 하고 난뒤에 고민하려고요. 쓰다 보면 정답을 알게 될지도 모르죠. 가을이 오려나봐요. 잡념과 상념에 젖어들곤 하네요. 다음 이야기의 원고도 함께 보내드릴게요. 고생 많으셨어요. 디자이너님께도 말씀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잘 읽어 보았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가을이 오려나 봅니다. 겨울쯤에는 얼굴 뵙고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우리 열심히 씁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