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만날 수 있겠느냐는 유은의 물음에는 말 그대로 내가 유은을 계속 만날 수 있겠느냐는 뜻도 내포되어 있었겠지만, 공부하러 만리타국에 유학까지 가는 본인이 한국에서보다 무관심해질 수도 있는데,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기도 했으리라.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신이 없었다. 유은이 한국에서 당장 내 곁에 있을 때도 나는 유은을 질투했고, 더 큰유은의 관심을 필요로 했다. 그런 유은이 한국을 뜬다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였다면 그따위 유학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을 테고 오히려 유은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접게 만들도록 도와줬을 테지만, 유은을 실제로 만나서 연애까지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유학'에 대해 가볍게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별'이라는 선택지를 섣불리 택할 수도 없는 법이었다. 유은의 마음도 편할 리는 없었겠지. 유은의 질문에 나는 한참 동안이나 답을 하지 못했고,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내심 유은이 나를 붙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내질렀다.

"그럼 우리 여기서 그만하는 게 좋을까? "


나 또한 생각을 내지르긴 내질렀으나 결코 쉽게 생각하고 내뱉은 말은 아니었고, 유은도 그런 나의 마음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그렇기에 내가 던진 그 말은 우리에게 더욱 심각하고 무겁게 다가왔던 것이다. 사실, 그 어떤 20대 중반의 연인을 보더라도 조건이 맞지 않거나 배경 차이가 심하다는 이유로 갈라서는 일은 잘 없다. 하지만 유은과 나는 현실적인 문제와 미래에 대한 문제가 얽히고설킨 벽에 부딪히게 된 것이니, 나는 장난 같은 현실이 참 야속했다. 일찍이 어린 나이에 그러한 막연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2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도록 열심히 살았던 유은 덕이 아닐 성싶다.


"아무래도 그게 낫겠다. "유은은 한참을 고민하다, 한참 동안이나 감정 가득 섞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날 내뱉은, 내가 열고 유은이 마무리한 이별의 서막은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한다. 나는 언젠가 찾아올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기 위하여 애를 썼다. 사랑만으로 사랑하고 싶었고, 사랑이라는 이유로 유은의 유학과 같은 막연한 것들까지 기다려 주고 싶었다. 나도 그에 걸맞는 멋진 사람이 되어 유은을 품에 안고 싶었고, 나도 유은에게 있어 '의지할 만한 상대'가 되고 싶었는데, 그런데, 나는 자신이 없었다. 유은을 기다릴 자신이 없다는 것은 둘째 치고, 유은이 없는 동안에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데에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의처증에 가까운 애인에 대한 나의 집착은 좀 사라졌나 싶었지만 여전히 그대로였고, 그렇지 않아도 시차 때문에 연락하기가 힘들 텐데 연락이 가능한 시간에도 어쩌다 연락이 안 되는 날이면, 불안은 배가 될 것이고. 아, 차라리 나도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유은이 불란서어 공부에 빠져 있듯, 나 또한 그에 엇비슷하게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더라면 뭐라도 달라졌을까.


또, 유은의 교환학생 결과가 확정이 난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그리도 극단적으로 이별을 결심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답하건대, 떠나고 말고의 문제를 제외하고 연애를 시작하며 이별하던 그날까지 유은은 내게 '유학 예정'이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 적은 있다만, 그 말만 들어서는 '유학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나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는 법이고,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인데 나에게는 그 어떠한 이야기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왜, 그렇지 않은가. 연애에 있어서 중대한 사실일뿐만 아니라 일생에 있어서 획을 그을 정도로 중요한 경험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인 '유학'에 대한 이야기를 애인인 나에게는 꺼내지 않았으니. 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내가 믿음직스러운 존재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고, 나는 대체 유은에게 어떤 존재인가 회의감이 크게 들었다. 만일 이번 교환학생 모집에서 아쉽게 뽑히지 못한다면, 어릴 적부터 모아 놓은 돈으로 다가올 겨울방학에 유럽에 좀 오래 머물다 올 것이라는 유은에게 '이별'은 어쩌면 당연히 필요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유은이 나로 인해 날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은을 날지 못하게 한다고 한들, 유은이 내 말에 따르지도 않겠지만, 아, 오히려 내가 유은 덕분에 홀로 나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닐는지.


탈출에는 대가와 용기가 따르고 이후에 벌어지는 아픔이나 감수 또한 나의 몫이다. 유은과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고야 말았다. 내가 계속 만약을 가정하며 유은과의 사랑을 떠올려도, 우리가 계속 사랑하고 있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떠올리며 그리워해도 결국 바뀌는 것은 없다. 유은과의 사랑은 저물었기에 아름답게 미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 사랑만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시기의 우리는 또래들에게는 별거 아닌 '현실이라는 문제'에 부딪혀 이별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나 조급해한 것인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랑을 접어가며 달렸던 것인지. 다 지난 이야기지만, 지난 사랑들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주 저릿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보다.


이렇게 문자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구나. 아직까지 너의 번호는 너무나도 익숙해서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단다. 너는 나의 세상이었다. 너는 나의 우상이자 내게는 너무나 큰 존재였다. 너를 바라보며 나는 꿈을 키웠고 지금의 내가 되었단다. 고맙다. 잘 살아라. 더 높은 곳에서 너의 날개를 펼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