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년 전 구매한 에어팟 2세대가 고장 났다. 사실 한참 전부터 사용하던 에어팟의 왼쪽 유닛이 고장 나서 오른쪽 유닛만 사용해 가며 겨우 연명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고장이 나고야 말았다. 전화를 하는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더라. 물건을 하나 사면 고장 나서 못 쓸 때까지 사용하는 성격 탓에, 에어팟 양쪽이 다 망가질 때까지 가만히 두었다. 그래. 20만 원짜리 이어폰 3년 쓴 거면 많이 썼다. 옛날이었으면 사용하던 이어폰에도 정이 들어서 바꾸기를 망설였을 텐데, 이제 딱히 그런 감정은 들지 않더라.

아무튼 이어폰 없이 살기는 어렵고, 또 몇 년 동안 사용할 것을 감안하면...

최신형 에어팟 하나 새로 사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에어팟 프로를 샀다.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사용하면 그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주변인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구매했지만, 실망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에어팟 프로 2세대의 통화 음질은 에어팟 2세대보다 못하다. 이건 기기 자체 결함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길래 조만간 서비스 센터를 찾으려고 한다. 에어팟을 착용한 채로 웃으면 에어팟이 빠진다. 이건 내 신체 구조의 문제인 것 같다. 수십만 원을 지불하고도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한다니. 사서 고생이다.


2. 에세이 카테고리를 하나 열었다. 내가 하고픈 글이 무엇인지 한참 동안 고민했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글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나는 내가 하고픈 글이 무엇인지 잘 알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빙글빙글 돌려서 하기 위해 2년 전에는 시만 썼고, 가끔은 캐릭터를 내세워 내가 하고픈 말을 긴 글로 풀어냈다. 나는 내가 떠드는 이야기를 소수 인원과 공유하기 위하여 블로그에서 에세이 시리즈를 몇 년 동안이나 썼던 것이다. 하고 싶은 글이 참 많다. 퀄리티 높은 작업물도 많이 만들어내고 싶고, 여러 사람들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콘텐츠도 자주 올리고 싶다. 해야 할 글 또한 참 많고 많다. 하지만 결국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내 이야기'였던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말이다. 길지도, 어렵지도, 무겁지도 않은 글인데 쓰는 중간중간 턱턱 막히는 것이 영 쉽지 않다. 내 이름을 걸고 카테고리를 여는 첫 자리라서 그런 걸까. 이상준 에세이 시리즈는 오랫동안 연재할 것 같다.

나는 무언가에 빨리 질리는 스타일이 아니니까.


나쁘게 말하다

어둠 속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렸다

어떤 그림자는 캄캄한 벽에 붙어 있었다

눈치챈 차량들이 서둘러 불을 껐다

건물들마다 순식간에 문이 잠겼다

멈칫했다, 석유 냄새가 터졌다

가늘고 길쭉한 금속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잎들이 흘끔거리며 굴러갔다

손과 발이 빠르게 이동했다 담뱃불이 반짝했다, 골목으로 들어오던 행인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저들은 왜 밤마다 어둠 속에 모여 있는가저 청년들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의 쾌락은 왜 같은 종류인가


3. 코끼리 이야기가 있다. 코끼리는 어릴 때 밧줄에 묶인 채로 지낸다. 아기 코끼리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안간힘을 써도 밧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코끼리가 자란다. 이제 몸이 제법 커졌다.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동물 중에서 가장 강력한 놈은 코끼리다. 어라?

그런 코끼리 발목에는 아직도 밧줄이 있네.

코끼리는 충분히 밧줄을 끊고 도망칠 수 있지만, 도망칠 생각조차 못 한다. 어린 시절 그토록 도망치기를 시도했지만, 밧줄이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코끼리는 성체가 되어서도 도망칠 생각을 못 한다. 결국 코끼리는 자신을 옥죄고 있는 밧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코끼리 이야기. 누군가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4. 사람은 채워 넣을수록 부족한 부분이 자꾸만 보이기 시작한다. 웃기다. 원래 그렇다. 어설프게 공부한 사람들은 철저하게 공부한 사람보다 더 기세등등하다. 그래서 많이 배운 사람들은 겸손하고, 많이 아는 사람들은 입을 잘 열지 않는 것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여기서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매함의 봉우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절망의 계곡'까지 가는 경우도 드물다. 거기까지 가는 것도 객관화가 되는 똑똑한 놈들만 가능한 이야기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고 또 채워 넣다 보면 대체 불가능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운과 재능도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장마는 시작되고 떠나는 연인들은 흔적을 남긴다. 5. 이제 장마의 시작이다. 장마가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올리는 글이다. 이런 사소한 것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 이제 '한여름'이 머지않았다. 밖에 나가 길을 걸을 때마다 물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드는 그런 계절이 왔다. 장마는 생각보다 길고 생각보다 짧다. 나는 비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일 년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 이 장마철을 좋아한다. '이렇게 많이 내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리는 비를 볼 때면, 무언가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어서 괜히 상쾌해진다. 언젠가 내가 쓴 글에 나오는 구절이 있다. '그렇게 장마는 시작되고 떠나는 연인들은 흔적을 남긴다. 이 문장이 떠오르는 계절이다. 여름은 진작 왔다.

이제 장마의 시작이다. 지나고 나면 한여름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