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좀 떠날래.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어. 혼자 있고 싶어. 안 된다.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된다. 당신을 혼자 둘 수는 없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당신을 혼자 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당신이 부탁하는 것을 줄곧 들어 주던 내가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들게 되기 마련이다.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당신과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지만, 그러니까 우리가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그런 시나리오 따위는 내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당신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그 믿음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당신을 잃고 싶지 않다는 미련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어느 순간 당신이 철이 들고 새사람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소망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철이 든다는 것도 애매하다. 멀리서 당신을 보았을 때는 참으로 깊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으니 말이다. 넓고 다양한 책을 탐독하고, 몰입감 있는 글을 썼으니까. 문학적 소양이라는 것이 당신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어쩌면 나의 편협한 시각이 당신에 대한 기대의 몸집을 불린 것이 아니었나 싶다.


당신이 떠난다고 말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을 시점에서 문자가 왔다. 새벽 두 시쯤 목이 말라서 깼다. 목이 말라서 깬 적이 없는데, 목이 말라도 귀찮아서 굳이 물을 마시러 일어난 적이 없는데, 그날은 참 이상했다. 물을 한잔 마시고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아무래도 떠나야겠어. 환기 좀 하고 올게. 바닷가로 가려고.

정리가 되는 대로 돌아올게. 네 말마따나 미래를 그려야 할 때야. 사람 감정이라는 게 신기하다. 심하게 고조되면 울렁거린다. 너무 기쁘고 벅차서 미쳐 날뛸 것 같을 때면 속이 울렁거리며 헛구역질이 나곤 하는데, 너무 당황스럽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도 매한가지라는 말이다. 먹은 것도 없어서 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내 속을 두 번이나 게워 냈다. 속이 쓰릴 법도 한데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대여섯 가지 정도였다. 죽음, 이별, 자살, 실종, 무위, 공포, 등과 같은 감정의 편린이었다.


나의 사랑에는 왜 항상 타인의 사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깊은 굴곡이 있는 것인가. 당신이 언젠가 내게 해 준 말 때문에 내 머릿속에는 일어나지도 않은 시놉시스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신은 나를 떠나 바다로 갈것이다. 당신은 나를 버리고 죽을 것이다. 당신은 더욱이 당신의 깊은 상처를 헤아릴 수 있는 그런 다른 남자를 찾아 나를 떠날 것이다. 당신은 나도 연애를 할 적에 당신이 만났던 전애인들을 다시 찾을 것이다. 당신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동해로 갈 것이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간신히 잊을 때쯤 등장하여 다시 내 마음을 헤집어 놓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은. 내가 대체 무슨 망상에 빠져서 당신을 의심하고 오해하고, 또 속으로 음해하는 것인지. 한심했다. 의심이 있으면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반드시 무조건적이어야만 하나. 하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우리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무조건적인 사랑도 있고 조건적인 사랑도 있는 법이다. 다만 나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상대에게 쏟아붓는 사랑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이길래 당신은 문자 한 통에 나를 떠날 수 있다는 말인가.


당신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으면서도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당신이 일면식도 없는 타인보다 멀게 느껴졌다. 우리가 무엇보다 가까워졌다고 느낀 것은 원활하고 잦은 정서적인 교류 때문이 아닌, 매일같이 붙어 있으며 한 잦은 섹스 때문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우리 관계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당신이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무엇을 얻고 돌아올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혼자 떠난 당신의 행동은 도피성인지, 아니면, 당신이 가지고 있던 문제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고자 하는 이유로 계획된 일이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우리 둘의 대화에서는 얻어낼 수 없는 답을 얻기 위해 떠났을까. 바다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왜 하필이면 바다일까. 그리고 바다로 떠난 사람은 왜 하필 당신이었다는 말인가.


당신이 너무나 미웠다. 그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빈속에 게워 내어 남아 있는 것도 없는 나의 황폐한 속에다가 소주를 네 병이나 들이부었다. 평소 당신과 함께 나누어 마시던 소주가 세 병 정도이니, 엄청난 양의 소주를 혼자 퍼마신 것이다. 담배를 두 갑이나 피웠다. 자취방에 옵션이랍시고 딸려 있던 20인치짜리 티브이를 괜히 틀어 놓았다. 방 안의 정적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티브이에서는 철 지난 예능을 보여 주고 있었다. 티브이 속에는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다른 세상을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에도 내 잡념은 끊이지 않았고, 나는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당신을 애타게 찾아 나서기도 했다. 당신이 자주 가던 서점과 공원, 당신의 자취방, 당신과 내가 함께 갔던 그 강릉 바다까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당신이 떠난다는 문자를 받고 일주일 동안은 폐인처럼 살았다.

그럼에도 글은 썼다. '그럼에도'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래서' 글을 썼다.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될 것만 같았다.

당신에게 정을 너무 많이 붙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아파하고 또 힘들어해야 하나, 뭐 이런 생각을 할 때쯤 초인종이 울렸다.

그래. 당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