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전 섹스] 이제 어쩌다 섹스하고 뒤늦게 어영부영 관계를 정립할 나이는 지났다. 대실하고 나온 모텔 앞에서 '오빠 우리 무슨 사이야'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닌 것 같다. 내 나이도, 만나는 사람들의 나이도 '새내기' 티를 벗어난 지 오래다.

푸릇푸릇함보다 어딘가에 찌든 느낌이 강하다. 수능을 친 지 오래다. 내가 공부했던 수능특강 표지가 무엇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첫 엠티 때 갔던 리조트 이름은 기억도 안 난다. 스무 살 때 대학에서 처음 만난 여자와 무슨 영화를 보러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 영화관이 어디였는지는 기억난다. 신촌 메가박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우리는 파스타를 먹었던 것 같다.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참 많지만, 그때 만난 여자와 갔던 모텔 이름은 생생히 기억난다. 나의 풋풋한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장소니까. 그때 나는 어렸다. 여자 좀 많이 만나 봤다고 자존감과 콧대가 하늘을 찔렀을 때지만, 지금 돌아보는 그때의 나는 스무 살짜리 애새끼에 불과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객기 좀 부려도 어려서 괜찮았다. 어리다는 이유로 용서받았다.


'야, 우리 무슨 사이야'라는 그 말을 처음 들었던 그날을 기억한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단도직입적인 문장을 입에 올린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게. 우리 무슨 사이일까.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정하고 섹스해도 늦지 않았을 텐데. 아니, 무슨 사이인지 정하고 섹스했다면 뭐라도 달라지는 것이 있나?

글쎄. 나를 돌아볼수록 돌아오는 건 후회와 반성뿐이다. 이건 왜 이랬을까, 저건 왜 저렇게 했을까,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저건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그런 것들이 많다. 인제 와서 돌아보는 당시의 나는 너무 조급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급했을까. 남들 손잡는 시기에 키스하고 섹스하면 뭐라도 앞서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조금 돌아가도 됐을 텐데 말이다. 그때 나는 차마 '우리 그냥 가벼운 사이로 남는 게 어때'라고 답하지 못했다. 막 스물이 되고 한껏 캠퍼스 로망에 젖어 있을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그녀와 똑같은 나이였지만 말이다. 그런 위선과 선민의식이 가득했던 나의 스물이다.


섹스하고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돌아가서 나쁠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잘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섹스를 한 뒤, 연애를 한다고들 하는데...

그럼 사귀기 전에 했던 섹스가 잘 안 맞으면 그 섹스는 무효라고 생각하는 건지. 사실 그렇다. 섹스가 사랑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섹스가 전부는 아니다. 사귀고 섹스하는 것도, 사귀기 전에 섹스하는 것도, 뭐 다 취향 차이이긴 하지만,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지 않을까. 다 안 맞는데 섹스만 잘 맞으면 그것대로 문제다. 다 별로인데 섹스 하나만 보고 꾸역꾸역 이어가는 관계는, 정말이지 그것만큼 비참하고 짐승 같은 관계도 없다. 상대방이 '우리 무슨 사이야'라고 물었을 때, '뭐... 우리 그냥 섹스만 하는 사이로 남는 게 어때'라고 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우리가' 저지른 행동에'나'만 쏙 빠지는 그런 책임감 없는 찌질이로 남기가 싫었다. 이제는 그런 질문조차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별 후 섹스] 헤어지고 섹스를 한다. 더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외치며 섹스한다. 매번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나라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환멸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안 될 걸 알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거는 그 미련한 행동은, 내가 나이를 먹는다고 바뀌질 않더라. 다시 만나서 얼굴이라도 보면 뭐가 달라지겠지, 다시 만나 섹스하면 우리 관계가 조금 달라지겠지, 우리는 다시 행복해지겠지, 이런 헛된 기대 말이다. 내가 마음이 먼저 떠날 때도 있고, 상대방이 먼저 떠날 때도 있었지만, 우리가 만나게 되는 계기는 결국 '잘 지내? 얼굴이나 한번 보자.'


그녀의 뻔한 연락에 기대를 가지고, 우리 사랑의 불씨를 다시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그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술을 마시고 익숙하게 섹스를 하고. 그 섹스에 모든 것을 보여 주어야 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에 나는 평소보다 더 조급하고. 그렇게 끝-. 남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얻는 건 순간적인 쾌락.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늘 정반대의 결과가 나를 반겼다. 나도 알고 있던 뻔한 이야기. 뻔한 전개.


이별 후의 섹스는 마치 냉동실에 몇 주 처박아 놓은 피자를 다시 데워 먹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 배달 왔을 때의 피자 맛을 생각하고 먹지만 한 입 먹으면 후회한다. 나름 맛있게 먹기 위하여 노력한다. 오븐에 데우기도 하고, 전자레인지에 물 한 컵 넣고 돌리기도, 에어프라이기에 데워 보기도 하지만,갓 배달 온 피자에 한참 못 미친다. 어쩌면 연애 전 섹스보다 더 별로인 것이 이별 후의 섹스다. 소설에도 구성 단계가 있고, 우리 인생에도 단계가 있고, 욕구에도 단계가 있다.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연인 간에 존재하는 사랑의 단계를 거스르려고 한다면 우리는 상실감이나 죄책감, 회의감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또 모른다. 헤어진 연인의 연락을 받고는 괜한 감상에 젖어 옷을 챙겨 입고 나가 술을 마시고, 또 후회할 행동을 남길지 모른다. 깔끔한 이별은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의 마음을 가장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렵다.

스스로를 돌아볼 때마다 부끄러운 기억들이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