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나를 갉아먹는 행위다. 사랑을 통해 얻는 것이 많다고들 하지만, 대개 사랑을 통해 대단한 무언가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당연하고 누구나 아는 시시한 것들이 '사랑을 통해 얻어낸 깨달음의 산물'이라고 여기며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나의 문장과 단어에는 날이 한껏 서 있어서, 혹자는 나를 보고 '연애 한 번 안 해 본 놈이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할지 모르지만, 반대로 내 의견에 공감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특별하고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의 결과가 결국에는 비슷하게 흘러갔을 테니 말이다.
1. 행복 사랑하면 좋다. 사랑에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린다. 사랑하게 되면 애인에게 뭐든 다 해 주고 싶고, 다 퍼 주게 된다. 상대방이 내 세상의 전부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사랑에 빠진 인간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세상에는 '나'와 '너'만 존재하고, 그 외의 사람들은 우리를 빛내기 위해 존재하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는 생각, 세상은 우리의 멜로 드라마를 위하여 지어진 세트장이라는 생각까지 들기 마련이다.
요즘 흔히들 커플들에게 하는 말, '세상이 아주 핑크퐁이지?'라는 말이 '연애 초 커플의 상태'를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것은 사랑의 진행 과정에 있어서 겨우 첫 번째 단계에 불과하지만, 이마저도 넘기지 못하고 헤어지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아픈 현실이다. 매년 신상 아이폰이 나오면 바꾸듯, 매달, 혹은 분기별로 애인을 바꿔대는 이들이 존재한다. 아, 안타깝기도 하다. 사랑의 여러 과정을 몸소 겪어 본 후에 사랑을 이야기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사랑을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더 비판적인 태도를 가지니 말이다. 어찌 보면 그런 인스턴트식 연애의 결과는 당연할 텐데 말이다.
2. 실망 사랑의 다음 과정은 '실망'이다. 이때 가장 많은 연인들이 이별을 결심하곤 한다. 나는 앞선 과정을 설명하며, '첫 단계'에서 이별하는 이들에게 다소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이 과정에서 이별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한 소리를 할 생각이 없다. '실망'이라는 과정에서 이별을 결심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으며, 오히려 이때 사랑을 끊어내지 못하고 지속할 경우, 우리의 정신과 심리 상태에는 악영향을 미치니 말이다. 여기서 실망이란 참 다양한 양상을 띤다. 기대하던 것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오는 실망감, 나를 배신한 행위를 한애인에게서 느끼는 실망감, 혹은 현재 내 앞에서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이 아주 다르다는 괴리감에서부터 오는 실망감. 아,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별을 결심하는 이들은 진정으로 용기 있는 자들이며 현명하다고볼 수 있는 이들이다.
보통의 연애는 이렇게 '실망' 단계에서 끝난다. 하지만, 이때 느낀 실망을 안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불쌍한 이들이여.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전개되는지 한번 볼까?
3. 감수 사랑의 다음 과정은 '감수'다. 감수와 더불어 '자기 최면'까지 안고 가야 하는이 과정은 정말 고통스럽다. 연인들이 저마다 다투는 이유가 다양하듯, 무엇을 감수해야 하는지도 저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실망' 단계에서보다 느끼는 실망을 감수하기로 마음먹는다는 말이다.
누구는 애인의 외도를, 누구는 애인의 본성을, 누구는 애인의 과거를, 누구는 애인의 다른 무언가를 감수한다. 사랑에 감수가 들어가는 순간, 이제 그 사랑은 평범한 사랑이 아니게 된다.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지속하기로 한 우리의 선택이 옳다고 믿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그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사랑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그것이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동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4. 고통 사랑의 그다음 과정은 '지속적 고통'이다. 감수를 할 때만 해도 모든 것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게 아니다. 감수하기로 한 내용이 문득문득 떠오르며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곤 한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다 감수하기로 했는데 찌질하게 왜 이래', '다 감수하기로 한 거잖아'라고 말하면서. 이 과정은 정말 고통스럽다.
5. 안정 사랑의 마지막 과정은 '안정'이다. 그 고통스럽던 수 개월 동안의 감수를 겪고 버티면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이제는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공들여 쌓아 놓은 관계를 무너뜨리기 싫은 나머지 합리화를 계속해서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단계라고 해서 '완전한 감수'가 끝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 단계에서만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경우는 없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다섯 단계다. 그렇다고 '안정' 단계에 돌입한 사랑이 건강한 사랑이냐고 본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 같다. 감수의 과정을 겪고 그것을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감수가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나는 말이다. 감수라든가 고통이 없는 사랑을 한번 해 보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다섯 가지 단계도 다른 방향으로 수정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