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은 나의 성장에 촉매제로 작용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 생각에 근거가 없으면 훗날 냉혹한 현실과 객관적인 나의 주제를 깨달았을 때 더 큰 상실감에 빠지는 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내가 특별한 것 같다는 그 생각은 수치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막연한 '재능'이라던가 '잠재성', 망상 속에서 그려 온 '가상의 나'로는 사실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스스로에 대한 망상은 자유지만, 달콤한 상상에 빠져 살아서는 결코 발전할 수가 없다.
수치나 결과가 분명히 나타나는 성과로 본인의 특별함을 증명해야만 한다. 이건 남 좋으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해야만 더 나은 버전의 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설픈 동기부여적 멘트가 아니다.
2. 사람마다 싫어하는 단어가 하나씩 있을 것이다. 반짝 뜨고 지는 유행어를 싫어하는 사람이 가장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밀듯 등장하는 새로운 유행어, 그리고 잘 쓰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부터 회자되는 단어. 럭키 비키, 뿌시러 가자, 폼이 미쳤다나 뭐라나. '스껄할래'라는 이 말은 대체 왜 유행하는지 모르겠다. 한 달만 인터넷과 단절된 삶을 살아도 새로이 등장한 유행어에, 유행 따라가기가 어려워진다.
거기서도 나는 요즘 SNS에서 자주 보이는 '감도 높다'는 말을 싫어한다.
요즘 사회나 SNS에서 기저에 깔린 허영심이나 지적 우월 욕구가 가장 잘 드러나 있는 단어인 것 같아서. 본래의 뜻은 그게 아닌데 억지로 의미를 만들어 사용하는 꼴을 보니,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는 문장을 보고 '나는 심심하지 않다. 사과하는 사람 태도가 왜 저러냐'고 답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나는 어설프게 있어 보이려고 '척하는' 이들이 싫다. 그런 단어도 싫고 그런 사람도 싫다. 그렇게 '척'해 봐야 알맹이는 그게 아닌데. 잘 포장된 껍데기 속 알맹이는 대화 10분만 나눠 보면 드러나게 돼 있다.
3. 허영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주제를 조금 더 파고들어 볼까. 2020년 대한민국 통계청에서 조사한 우리나라 월평균 월 소득을 보면, 25세에서 29세까지의 20대 중후반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평균 월급이 258 만 원이다. 조금 더 경력과 연차가 쌓인 30세에서 34세에 해당되는 이들의 평균 월급을 보면 월 319만 원. 4년 전 통계이기에 지금과 조금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극적인 차이는 없다고 보아도 된다. 하지만 인터넷 세상 속 사람들을 보면 월급 뒤에 0이 하나 더 붙은 것처럼 소비하고 살아간다. 아니, 월급 뒤에 0이 하나 더 붙어도 선뜻 누리기 어려운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척'하며 산다. 명품이라던가 사치품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옷장 속에는 옷이 차고 넘치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산다. SNS 바이럴 마케팅이나 매거진에서 추천하는 아이템을 산다. 샀던 거 또 사고, 비슷한 거 또 사고, 예쁘니까 사고, 어차피 집 못 살 거 같으니까 이거라도 사고, 그냥, 좋아 보이니까. 멋져 보이니까. 글쎄다. 대한민국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월급은 300만 원 남짓이다. 변함없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담보 삼아 당장의 쾌락을 즐기고 있다.
4. 우리는 결핍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사람은 반드시 트라우마를 겪고,그 트라우마를 극복하여야만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트라우마를 덮고 회피하려고 한다. 그것을 '제대로' 직면하기 어려워한다.
왜?
다시 꺼내면 힘들어지니까.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내게 생긴 트라우마를 한 번쯤은 마음먹고 '제대로' 직면해야 한다. 그래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5. 글이라는 것을 쓴다. 잘 써질 때도, 안 써질 때도 있다. 그건 내 개인적인 사정이고, 어찌 됐든 마무리하고 디자이너 시온 님께 전달한다. 표지 디자인이 나오면 서로 의견을 조율하여 합의점을 찾는다. 의견 충돌이 있을 때도 많다. 그렇게 표지도 완성될 동안 나는 게시글을 잘 편집한다.
썸네일 최종본을 전달받으면 마침내 업로드 준비가 완료되는 것이다.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대중들에게 심사를 받는 입장이다.
어떤 글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반응이 좋고, 어떤 글에는 애정을 쏟아부었는데도 반응이 저조하다. 팔로워 대비 좋아요 수가 극히 떨어지는 게시글도 있다. 나의 아픈 손가락이 아닐까. 이런 글의 좋아요 수를 비공개하며 눈 가리고 아웅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무엇이지?
6. 그래. 나는 이런 글도 쓴다. 언젠가 한 팔로워분께서 나의 에세이를 보고 '달달한 술 같다'는 댓글을 남겨 주셨다. 이번 글을 보고는 무슨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쩌면 소주나 고량주 같다고 느끼실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글도 쓴다. 사실 이런 글을 더 자주 쓴다. 이런 글을 더 잘 쓴다. 블로그에는 이보다 더 정제되지 않은 글을 올리지만, 공식적인 계정이라 많이 다듬고 또 억눌렀다. 내가 쓰고 다루는 여러 류의 글 중 이런 글이 제일 나답다고 생각한다.
애인에게는 비밀로 하겠지만 첫사랑 애인에게 이 말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때도 말하지 못했고, 지금도 말하지 못하지만 "사랑은 식어" 설명할 수 없이 높이 난다는 새들도 식어서 떨어질 때가 있고 그러면 뜨거워진 다른 새가 또 날아오르고 그 새는 예전의 새를 기억하지 못하고 "식으면 다시 시작되는 거야 새들처럼' 애인에게 이 말을 할 수 없지만 (답장이 없자 애인은 어머니를 찾아갔지 어머니는 세월 가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믹스커피를 먹여 보냈지) 며칠 후 알약이 바닥에 흩어지고 애인은 북회귀선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지 흉터는 남았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떨어져 깨어진 자리가 내 자리였을지도 모르지 인생이라는 건 식어서 떨어진 새들만이 아는 걸까 "사실은 오늘도 당신에게 날아가고 싶었다"고 끝내 애인에게 이 말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