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노래. 노래는 동상이몽과 같다. 같은 노래를 들어도 떠오르는 생각이 다 다르기 마련.

누구는 신나는 노래를 들어도 그 노래에 담긴 슬픈 추억 때문에 흥을 내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 노래를 들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

떠오르는 궁금증에 기획한 게시글.

노래에 담긴 우리의 추억을 담아 보았다.


유재하 「지난날」. 지금이야 다들 에어팟이나 버즈와 같은 무선 이어폰을 쓰지만, 모두가 줄이어폰만 쓰던 시대가 있었다. 그해 오월이었나 유월이었나.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던 무렵 우리는 청계천에 갔다. 청계천에 발을 담그라고 하면 이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담그지 않겠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다.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많이 남아 있던 때였다. 청계천을 바라보며 한참 멍을 때리고 있으니 당신이 이어폰 한쪽을 내 귀에 꽂아 줬다. 좋은 노래를 하나 찾았다며, 나도 분명 좋아할 것이라며 틀어 주었던 그 노래는 유재하의 「지난날」이었다. 유재하의 목소리와 현대적이면서 레트로한 멜로디가 당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당신 탓에 아직도 나는 종로에 가면 이 노래가 떠오른다. 이노래를 들을 때면 그해 청계천이 떠오른다.


잔나비 「밤의 공원」. 지금의 애인과 사귀는 사이가 아닐 때, 그러니까 조금 더 알아가고 있던 무렵의 일이다. 일찍 헤어지는 것이 괜히 아쉬워서 근처 공원 산책이나 좀하자고 발걸음을 붙잡았다. 지금 같은 날씨에는 공원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탓에, 사랑이 피어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어렵지만, 적당히 쌀쌀한 날씨의 공원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에 딱이었다. 그때 함께 들었던 노래는 잔나비의 「밤의 공원」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듣는 노래가 겹친다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그날을 계기로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며칠 뒤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올렸다. 그날 분위기와 잘어울리는 노래 덕이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있다.


사비나앤드론즈 「우리는 모두」. 신림동 반지하에 있던 너의 자취방은 습했다. 우리가 함께 그 방에서 머물기라도 하는 날이면, 열기와 습기 때문에 방 안이 후끈후끈해졌다. 너는 담배를 피운다는 핑계로, 나는 그런 너와 함께 있고 싶다는 핑계로, 우리는 집앞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때 담배를 피우며 네가 늘 듣던 노래가 있다. 수백 번이고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제목을 묻고 싶었는데 묻지 못했다.

언제든 물어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나머지, 제목을 묻지 못했다. 그러던 우리도 헤어졌다. 노래 제목을 물어보지 못한 채 어렴풋이 남아 있던 노래 가사와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토록 찾고 싶었던 노래도 결국 기억 속에서 잊히는구나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지인에게 전화를 거는데 소름이 쫙 돋았다. 이 노래다! 전화를 받자마자 해야 할 말은 잊은 채 컬러링 노래가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최엘비 「사랑은 위대해」. 존재를 잊는다는 건 그 대상을 죽이는 것과 같다. 실제로 인생에 있어서 망각과 살인은 현상적으로 차이가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노래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너는 나의 인생에 있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예수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각자의 실패를 이야기하고 너무나도 닮은 서로를 위로했다. 너의 눈은 달을 닮았었다. 아, 너의 달이 마구 휘었다. 나는 네 웃음을 좋아했다.

"저희의 실패는 무척이나 닮았네요. 물론 오빠의 실패가 더 아파 보이긴 하지만요. 저희와 닮은 노래가 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에요. 뭐 우리의 실패는 각자의 상대가 아주 나빴지만... 그렇지만 어쨌든 사랑은 위대했잖아요? "


슌 「내 꿈은 당신과 나태하게 사는 것」. 어떤 대상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그것의 부재로부터 알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상실의 고통에서 겨우 가능한 것이 사랑이라도, 너를 위해서 다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지만 할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다시 사랑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였을 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할 것이다. 내가 너를 모르고 너는 나를 사랑할 때, 내 프로필 뮤직에 있던 곡처럼 나는 너와 나태하게 살고 싶을 뿐이었는데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했다. 너도 변하고 나도 변했다. 나태할 시간 따위 없었다.

우리는 너무 바쁘다. 바빠서 서글프다. 바빠서 너를 잊게 되는 것이 싫다.


쏜애플 「로마네스크」. 우리 사랑의 노래라고 하면 떠오르는 상대가 추천해 준 노래부터 떠오르기 마련이다. 우울의 늪에 빠지기 직전 찾아온 사람이 추천해 준 노래였다. 사랑이라 부를 수는 없는 사람이었고, 사랑이라고 부르기에도 아까운 사람이다. 오래 본 사이도 아닌데 그 짧은 순간에 나의 깊은 얘기를 다 해버렸다. 노래를 들으며 '나도 날 안아줄 수가 없는데, 누가 날 안아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날 사랑하지 못하는데 그가 과연 날 사랑해 줄 수 있을까. 그래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사랑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직접적으로 우울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지 않아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덕분에 나를 더 잘 가꿀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것.


아이유 「밤편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누가 이렇게나 적절한 문장을 지었을까?

운 좋게 두 가지 다 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떠났던 여행. 우리는 그렇게 태국 남부로 떠났다. 나는 노을을 좋아했다. 우리는 노을이 지는 시간이면 맥주를 사 들고 바닷가로 향했다. 이미 반쯤 진 노을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그 순간 빠질 수 없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는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틀었다. 그 노래가 아이유의 밤편지였다. 노래를 듣고 있자니 이상하게 눈물이 흘렀다. 멋진 여행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바라보는 노을 그리고 맥주. 이보다 완벽한 순간이 또 있을까 싶어서 눈물이 흘렀던 걸까.


야, 잘 사냐?

쏜애플 「수성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