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으로 고통받고 싶다

질내 사정 후 모텔에서 도망쳐버린 남자의 이름을 알고 싶다

틴더[Tinder]에 공개된 개인 정보를 수정하고 싶다

자기소개부터 바꾸고 싶다

당장 만날 수 있다는 말로 꾀어서 엉뚱한 주소를 알려주고 싶다

199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1999]에 가고 싶다

우는 세연에게 새어나오는 나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서양 여자의 가슴을 움켜쥐고 싶다

세연의 모든 것으로 내 방을 가득 채우고 싶다

더 큰 방으로 옮기고 싶다

미워하는 마음에도 수고로움이 든다는 변명을 하고 싶다

애정으로부터 가장 먼 감정을 알고 싶다

가고시마현의 야쿠시마로 떠나 사라지고 싶다

그곳에서 바다 거북이의 알을 보호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

출근길에는 우비를 챙겨 한 시간 일찍 도착해 있고 싶다

맹그로브[Mangrove] 뿌리가 여과하는 원리에 대해 알고 싶다

오디오 테크니카의 사운드 버거[AT727]를 소장하고 싶다

처음으로 완성한 장편소설을 초심으로 두고 싶다

세연에게 오피오이드[Opioid]를 처방한 의사를 찾고 싶다

그 의사의 얼굴을 나의 아래에 가져다대고 싶다


눈사람이 녹는 소리를 녹음하고 싶다

죽음보다 종막에 가까운 고통을 느껴보고 싶다

세연이 보고 싶다

유해한 것들로 욕조를 가득 채우고 발부터 머리 끝까지 담그고 싶다

세례라고 믿고 싶다

세례명은 휴일[Holiday]로 짓고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자웅동체로 살면서 매일 일기를 쓰고 싶다

섹스를 그만두고 싶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모델이 되고 싶다

허리가 아플 정도로 웃어보고 싶다 콜드플레이[Coldplay]의 여섯 번째 앨범 아홉 번째 트랙 '0'를 듣다가 3:50초에 요절하고 싶다

고마츠 나나 스다 마사키의 집에 몰래 들어가 보고 싶다

그곳에서 도둑고양이처럼 자위하고 싶다 세연의 발인 전 날, 술을 마시고 모르는 남자들과 잤던 일을 마치 없었던 일로 하고 싶다

선형의 LED를 몸에 이식하고 나체로 도시공원을 산책하고 싶다

갈라진 입술을 천천히 뜯어보고 싶다

마포구청역 3번 출구 환풍구에 누군가 놓고 간 꽃을 되찾아주고 싶다

알레시[Alessi]의 와인 오프너와 블루스를 추고 싶다

한 장 남은 물티슈로 정액을 닦아내고 싶다

교각에 거꾸로 매달려보고 싶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급류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 약물로 고통을 이겨내는 세연에게 나는 단 한 순간도 비슷한 안도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꽃이 마른다면 저주를 감내하고서라도 거꾸로 매달고 싶다

세연의 떠난 진짜 이유를 알고 싶다

키키 키린이 출연했던 후지필름[FUJIFILM] 광고를 모두 보고 싶다

줄곧 명치에 심장이 있는 줄 알았던 과거를 부정하고 싶다

번식을 막아 세계 평화를 되찾아 주고 싶다

어느 여자의 남편과 플라토닉을 하고 싶다

나를 게워 냈던 여자들에게 내가 다시 살이 찌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두발자전거를 배우고 싶다

더는 위험하고 싶지 않다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을 대량으로 구비해놓고 싶다 그런데도 임신한다면 배를 타고 공해로 나가고 싶다

어린나무의 몸통에 나이테를 그려주고 싶다

처음으로 현상했던 서른여섯 장의 필름을 기억하고 싶다

언젠가 동전 노래방 유리 벽면에 비친 세연의 옆모습을 닮고 싶다

할아버지 댁에 걸려 있던 메주의 냄새를 다시 맡고 싶다

살구를 반으로 갈라 누군가와 나누고 편차 없는 과육을 맛보고 싶다

섭식장애를 극복하고 싶지만 과정이 오히려 병적이지 않나 싶다

골밀도가 높은 수영 선수가 되고 싶다


세연이 광고 모델로 나왔던 2018학년도 서울여자대학교 수시모집 포스터를 소장하고 싶다

심하게 아플 수도 있다는 의사 말이 거짓말이라 믿고 싶다

손가락 끝이 손바닥보다 핏기가 도는 사람이고 싶다

장례식에는 라벨[Maurice Ravel]의 볼레로[Bolero]를 틀어놓고 싶다

행을 쓰는 도중에 응급실에 실려 가고 싶다

퇴화가 진화보다 비대한 나이가 되고 싶다

멀리 떨어져서 걸어야 하는 연애는 그만두고 싶다

세연이 교회에서 간증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기고 싶다

긴 해저 터널을 걸어서 통과하고 싶다

죽기 직전엔 섬광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잘 지내고 계시진 않겠죠?'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고 싶다 맞은편 빌라 할머니가 가꾸는 화단에 몰래 물을 주고 싶다 휴대폰이 없었던 90년대로 돌아가고 싶다 Y2K로 선동해서 종교를 만들고 싶다 폴리아모리[Polyamory]를 계율로 삼고 싶다 20세기 말에 세연과 서유럽을 여행하고 싶다 그러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세연과 섹스하고 싶다 세연이 파리에 남겠다고 한다면 파리 8대학에 입시를 보고 싶다 졸업하면 퐁피두 센터에 취직하고 싶다 죽은 세연을 되살리고 싶다


눈이 멀어도 소리로 사람들의 얼굴을 식별하고 싶다

안리의 [Heaven beach]를 소장하고 싶다

언어가 안되는 나라에서 인형탈 알바를 하고 싶다

섹스 파트너에게만큼은 유쾌하고 해로운 사람인 척 연기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아내로 살다가 마흔 즈음에 아이 없이 이혼하고 싶다

휴거가 올 때 비로소 상승하고 싶다

한겨울에 서울숲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세연과 마주치고 싶다

세연과 말없이 따뜻한 수프를 먹고 싶다

케네스 그레인지[Kenneth grange]의 딸이 되고 싶다

아오키 유미코로 환생하고 싶다

다키니[Dakini]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포아[Phowa]하고 싶다

세연이 죽기 전에 내뱉은 말을 알고 싶다

세연과 연애했던 사람들을 찾아내 키스하고 싶다

여럿과 사랑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세연의 아래에 파묻힌 채로 잠들고 싶다

백행을 채우고 싶다